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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40] 드론과 알리

바람아님 2019. 9. 25. 08:59
조선일보 2019.09.24. 03:10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기지가 드론의 공격을 받아 하루 원유 생산량이 570만배럴까지 줄었다. 초음속 전투기 편대나 탱크 부대를 앞세우고도 해내기 힘든 일을 허접스러운 드론 몇 대가 해치웠다. 오죽하면 찢어지게 가난한 이웃 나라 예멘의 반군이 나서서 자기들 소행이라고 거들먹거릴까?

드론(Drone)은 본래 자동차 엔진이나 벌들이 윙윙거리는 소리를 일컫는 명사다. 동사로는 '빈둥거리다', 즉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며 놀고먹는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일벌 누이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일하는데 그야말로 빗자루 한번 들지 않다가 어느 날 차세대 여왕벌과 짝짓기 한 번 하고 땅에 떨어져 죽는 수벌을 영어로 드론이라 부른다. 인간이 만든 드론도 허무하기로는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유엔에 따르면 군사용 드론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20국이 넘는다. 제작 기술과 비용이 대단하지 않아 심지어 소규모 테러 조직도 손쉽게 만들 수 있다. 한쪽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면 다른 쪽에서는 이내 요격 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처럼 '안티 드론' 기술도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총이나 레이저로 격추하거나 작동 방해 전파를 쏘는 이른바 '소프트 킬(soft kill)'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3년 전 우리 곁을 떠난 역대 최고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는 스스로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며 거들먹거렸다. 실제로 알리가 나비처럼 펄럭거리며 날아다닌 것은 아니지만 워낙 발이 빠르고 상체 움직임이 유연해 상대 선수는 유효 펀치 몇 번 날려 보지 못한 채 경기를 마치기 일쑤였다. 지금까지 개발된 드론은 대체로 동작이 예측 가능한데 만일 나비의 비행 동작을 흉내 낸 드론을 만들면 따라잡기 대단히 어려울 것 같다. 힘과 체격에서 절대 우위였던 조지 포먼도, 탱크처럼 저돌적인 조 프레이저도 알리를 제대로 공략할 수 없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