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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37] 똥약(Poop pill)

바람아님 2019. 9. 4. 08:48
조선일보 2019.09.03. 03:10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나는 고등학교 시절 몸무게를 평생 유지하고 산다. 남자로서 극히 드문 경우라고 들었다. 다만 국립생태원장으로 일하던 시절 잠시 몸무게가 는 적이 있다. 팔자에 없던 기관장을 하느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했는지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이 왜 이렇게 폭삭했어요?" 하는 인사 일색이었다. 그런데 정작 몸무게는 거의 5㎏이나 늘었다. 난생처음 기사가 운전해주는 고급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 있었더니 속절없이 내장 비만이 생긴 것이다. 다행히 대학으로 돌아와 예전처럼 걸어서 출퇴근하며 서서히 원상태로 복귀하고 있다.

물만 마셔도 살이 찐다고 호들갑을 떠는 이들이 있다. 명백한 거짓말이다. 설탕물이라면 모를까 물만 마시는데 살이 찔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이 먹어도 살이 잘 찌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밖에 먹지 않는데도 살이 잘 붙는 사람이 있는 건 사실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게 상당 부분 장내 미생물 때문이란다.

호주에 사는 유대류 포유동물 코알라는 유칼리나무의 잎과 새싹만 먹고 산다. 생태학자들의 관찰에 따르면 다양한 유칼리나무를 먹는 코알라가 있는가 하면 한 종류만 편식하는 코알라도 있다. 퀸즐랜드대 미생물 생태학자들은 최근 편식하는 코알라 12마리의 장 속에 다양한 유칼리나무를 먹는 코알라의 장내 미생물을 이식했더니 그중 절반이 이것저것 먹기 시작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식성도 결국 장내 미생물이 뭘 좋아하는가에 달린 모양이다.

장내 미생물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조만간 '똥약'을 개발해 시판할 작정이다. 그렇다고 정말 잘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사람 똥을 그대로 캡슐에 넣어 판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 사람 똥에서 미생물을 걸러내 정제로 만든 것을 복용하게 될 것이다. 그리 되면 나 같은 사람 똥이 비싸게 팔릴 것이다. 이참에 내 이름을 내건 브랜드라도 개발해볼까?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