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가을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으로 임명돼 충남 서천군 마서면으로 내려갈 때 나는 이를테면 '국립생태학연구소'를 운영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더 막중한 임무는 연구가 아니라 지역 경제 활성화였다. 그 먼 곳으로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을 불러들여 돈을 쓰고 가게 만들어야 했다. 지방의 작은 마을에 새로운 볼거리가 생겼다는 걸 알리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재방문율을 끌어올리는 일이었다.
본격적으로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1995년 이래 우리나라 전국에는 엄청나게 많은 전시 기관이 만들어졌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착이라는 점에서는 바람직할지 모르지만 한결같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문제는 바로 재방문율이다. 첫해에는 어르신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들이닥친다. 그러나 사람들은 늘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어 하지 이미 다녀온 곳에는 좀처럼 다시 가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은 국민의 세금이나 축내는 애물단지로 전락한다.
잦은 자극에 익숙해지는 것은 본능이다. 새로운 자극은 자칫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신경이 쓰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새로운 경험에 훨씬 더 자극을 받는다. 일주일 내내 같은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맛있었던 음식점은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다시 찾는다. 그렇게 단골이 되는 것이다. 매번 새로운 음악만 듣기 원한다면 구태여 음원을 구매할 까닭이 없다. 어떤 음악은 왠지 자꾸 반복해서 듣고 싶다.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따분한 동물이다. 다만 따분하다고 스스로 인정하기 싫어할 뿐이다. 사람들은 박물관을 재방문하거나 한때 좋아했던 비디오게임을 다시 하며 새롭게 발견하는 '낯선 익숙함'에 기꺼워한다. 재방문율이 특별히 높은 곳은 단연 놀이동산이다. 바이킹이나 청룡열차의 짜릿함은 잊기 어렵다. 재방문율을 높이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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