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알고는 있을까, 정말 모르고 이럴까
서울 강남의 초(超)고가 아파트인 30억원짜리 래미안대치팰리스 33평형이 문재인 대통령 취임 때인 2017년 5월 가격, 16억원으로 떨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문 대통령은 14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급격한 가격 상승이 있었던 집값은 "원상회복돼야 한다"고 했으니 문 대통령의 '꿈'이 이뤄지는 것이다. 무주택 서민들, 집 한 채 있더라도 값이 거의 오르지 않아 엄청난 박탈감에 시달려온 '비인기 지역' 거주자들, 서울 집값을 바라보며 가슴 쳤던 지방 주민들의 묵은 체증은 쑥 내려갈 것이다. 소수에 불과한 강남 고가 주택 소유자들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의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니 정부로선 해볼 만한 일이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 사람들은 고가 아파트 값만 떨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겠지만, 시장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초고가 아파트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지는 일이 생긴다고 해도, 비(非)인기 지역 집값은 절반보다 훨씬 더 떨어질 것이라는 게 정설이기 때문이다. 시장이 몰락할 때 우량 자산보다 비우량 자산이 훨씬 더 큰 충격을 받는다는 것은 경제 상식이다.
이렇게 되면 중산층과 서민들까지 큰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하염없이 폭등하는 집값 때문에 가슴을 졸이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 내 집 마련에 나섰던 월급쟁이들은 느닷없이 쪽박을 차게 된다. 전셋값보다 집값이 더 싸지는 전형적인 역전세난도 불 보듯 뻔하다.
집값 폭락은 곧 담보 가치의 폭락이니 금융권의 부실채권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담보대출을 받아 사업을 하는 자영업자, 중소기업가들의 자금난이 악화돼 금융권 부실이 또 더 늘어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다. 집값 폭락은 경제가 위기에 처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그런데도 고가 주택만 콕 집어 집값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거래 허가제' 같은 황당한 소리가 청와대 정무수석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들은 아예 집값을 얼마 이하로 거래하라고 묶어버리고 싶을지 모른다.
문재인 정부 들어 오른 서울 아파트 값은 435조원에 달한다. 이 엄청난 자산가치의 증가는 많은 사람을 울고 웃게 했다. 무주택 서민들의 피눈물을 모른 척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 돈이 모두 투기꾼의 주머니 속으로만 들어갔다고 생각하고 우격다짐 식의 정책을 계속 내놓겠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18번이나 쏟아낸 규제 일변도 정책이 왜 실패했는지를 냉정하게 돌아보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문 대통령은 경제정책을 선악(善惡)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최종 목표에만 집착하는 것 같다. 선악에 지나치게 집착하니 '어떻게'는 소홀해지고, 온갖 무리수를 두더라도 선(善)에만 매달리게 된다. 집값은 내리는 게, 최저임금은 1만원이 되는 게, 주 52시간제는 예외 없이 실시하는 게 문재인 정부가 포기할 수 없는 선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꿈'을 이루자고 고집을 부리는 건 운동가나 할 일이고, 정부는 이걸 '정책 목표'로 만들어 성취할 방법을 찾아 집행해야 한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자영업자가 파탄 나고, 온갖 규제로 집값이 급등하는 부작용이 생긴 후, "우리는 좋은 일을 하려 했는데 누구 때문에 안 됐다"고 공격하는 건 선한 정부가 아니라 무능한 정부일 뿐이다.
경제는 정치가 아니고 전쟁을 할 대상도 아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경제가 반 토막이 나더라도 집값이 반값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통령을 갖고 있다. 문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이런 사실을 정말 모르는 것인지, 알고도 그러는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