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발표된 지난달 22일, 통계치를 발표하는 한국은행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경제성적표라 할 수 있는 GDP 성장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후 가장 낮은 2.0%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특별한 경제 쇼크가 없었는데도 3.2%(2017년)이었던 경제성장률이 2.7%(2018년), 2.0%(2019년)로 뚝뚝 떨어지는 것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디플레이션, 고령화로 요약되는 ‘일본화(japanification)’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경제총괄 부처인 기획재정부의 메시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나온 것 같은 느낌을 줬다. 이날 인천 경인양행에서 열린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위원회(소부장 위원회)’를 주재한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성장률 2% 사수는 시장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지킨 차선의 선방"이라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이날 지상파 방송에 출연해 성장률 2% 달성을 엄청난 ‘치적(治積)’처럼 홍보했다.
비슷한 장면은 반복되고 있다. 통계청이 ‘2019년 12월 및 연간 산업활동동향’을 발표한 지난달 31일 홍 부총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기 개선의 신호가 보다 뚜렷하게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했다. 이날 발표된12월 월간 광공업생산, 소매판매, 설비투자, 경기 선행·동행지수 등이 플러스를 나타낸 것에 고무된 것이다. 그러나 연간으로 광공업 생산이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제조업생산능력은 1971년 이후 가장 많이 감소한 사실에는 침묵했다. 연간 제조업 가동률은 IMF 외환위기 후 가장 낮았다.
홍 부총리를 포함한 현 정부 사람들의 통계 편식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문제는 보고 싶은 것만 바라보는 편향된 시각은 잘못된 정책 처방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해 성장률 2.0%에 대한 자화자찬은 우려스럽다. 기재부 관계자들은 정부 기여도 1.5%P(포인트)를 정부 거시정책의 성과로 생각하는 듯 하다. 미·중 무역갈등으로 악화된 대외환경에서 정부의 확장적 재정지출이 성장률을 끌어올렸다고 생각하고 있다. 민간 성장 기여도가 0.5%P로 추락한 것은 ‘아쉬운 점’이라고 표현할 뿐이다.
경제학계에서는 ‘민간 성장기여도 추락’을 비상 처방이 시급한 숙제로 손 꼽는다. GDP 성장률이 발표됐을 당시 다수의 경제학 교수들은 국내총소득(GDI)이 IMF 외환위기 후 21년 만에 마이너스(-0.4%)로 떨어진 것을 심각하게 바라봤다. 국내총생산(GDP)에 교역 조건 변화에 따른 무역 손익(損益)을 합친 국내총소득은 우리 국민의 구매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 지표가 마이너스인 것은 국민들의 호주머니가 가벼워지고 있다는 의미다.
‘GDI 마이너스’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들은 "반도체 가격 하락 등 교역조건 악화 때문"이라면서 별일 아닌 것 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GDI가 마이너스를 나타낸 것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6년, 오일쇼크가 일어났던 1980년, IMF 외환위기 때인 1998년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 대수롭지 않게 여길 일은 아니라는 의미다.
민간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의 반도체 의존증에서 원인을 찾는다. 차화정(자동차, 화학, 정유) 등 반도체 외 주력산업의 경쟁력 하락이 반도체 가격에 따라 국민 호주머니가 휘청거리는 기형적인 경제구조를 만들었다는 판단이다. 산업 구조조정에 관심이 없었던 정부 정책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소득주도성장을 한다면서 세금으로 만든 복지수당을 아무리 많이 늘려도 산업이 살아나지 않으면 국민들의 지갑이 가벼워 질 수 밖에 없다.
마이너스 경제지표가 빈번해진 것은 한국 경제가 늙고 있다는 징후다. 세계 경제의 평균 이상 성장률을 꾸준히 유지했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마이너스 지표는 상상할 수 없었다.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성장률이 낮아지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해서 마이너스에 익숙해지면 곤란하다. 한국 경제의 노화속도를 앞당길 수 있어서다. 마이너스 경제지표에 둔감해진 경제 관료들의 모습이 불안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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