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20.01.21. 13:46
겨우내 달린 비상식량, 직박구리 텃새 이기며 포식
10일 지인으로부터 인천 송도 미추홀공원에 황여새와 홍여새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 일찍 공원을 찾았다. 높은 나무 꼭대기에 새들이 마치 나무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렸다.
주변에 심어놓은 산사나무와 팥배나무 열매를 먹기 위해서다. 겨우내 달려있는 이 열매는 새들의 요긴한 겨울나기 식량이다.
열매를 따먹을 나무를 정하면, 가까운 곳에서 열매에 손쉽게 접근할 키 큰 나무를 골라 전망대 겸 휴식 횃대로 쓴다. 두 나무를 오가면서 열매가 다 없어질 때까지 포식한다. 물을 먹으러 갈 때도 물가 근처의 높은 나무를 정해 놓고 앉는 습성이 있다.
황여새 무리가 눈치를 살피다 재빨리 내려와 팥배 열매를 따먹고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기를 반복한다. 도심 속 공원이라 사람들이 자주 오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영향이 아니더라도 먹이를 먹을 때 매우 급하게 먹고 침착하지 않은 모습으로 허둥대며 반복적으로 열매를 따먹는 경향이 있다.
사흘 뒤 다시 미추홀공원을 찾았다. 팥배나무 열매는 이미 사라져 버렸고, 자리를 옮겨 산사나무 열매를 따먹는다. 홍여새와 황여새는 차례로 산사와 팥배 열매를 공략한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열매를 혼자 먹으러 다니지 않는다.
무리를 이루어 체계적으로 열매를 따먹는 질서 있는 행동을 보인다. 무리에서 이탈하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은 낯선 곳에서 겨울나기를 하는 새가 천적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려는 본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먹이를 섭취할 때 서로 싸우는 경우는 드물다. 홍여새와 황여새는 사이 좋은 이웃 사촌이다. 무거워 보이는 몸이지만 날 때는 빠르게 날갯짓을 하며 때론 날개를 접어 유선형으로 날쌔게 활공하는 멋진 비행술을 보여준다.
많은 수가 동시에 비행하며 미추홀공원 하늘을 마음껏 오간다. 터줏대감인 직박구리는 황여새가 탐탁지 않은 모양이다. 지속적으로 홍여새와 황여새를 쫒아내려 방해한다.
그러나 물러나는 것도 잠시뿐, 홍여새와 황여새는 팥배나무 열매에 다시 달려든다. 이곳에 먼저 도착하여 자리를 잡은 노랑지빠도 가세하여 텃세를 부린다.
황여새보다 드물게 찾아오는 홍여새를 오랜만에 만나 무척 반가웠다. 황여새 무리에 홍여새 서너 마리가 함께 생활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제법 무리를 이룬 20여 마리의 홍여새를 보기란 아주 드문 일이다. 홍여새의 몸길이는 18㎝로 황여새의 20㎝보다 약간 작다.
두 새의 생김새는 서로 비슷해 일반인들은 빨리 구분하기 힘들지만 요령이 있다. 홍여새는 꼬리 끝이 붉은색이고, 날개에 흰점이 없이 파란 회색을 띤다. 검은색 눈선이 뒤로 가며 넓어진다. 배 중앙은 흐린 노란색으로 보인다. 황여새는 꼬리 끝이 노란색이며, 날개에 흰점과 노란점이 있다. 검은색 눈 선이 가늘고 배는 회갈색이다.
홍여새와 황여새는 번식지역이 다르다. 홍여새는 러시아 극동, 아무르강 하류, 중국 동북부의 제한된 지역에서 번식하고, 한국, 중국 동부, 일본에서 월동한다. 황여새는 스칸디나비아 북부에서 캄차카에 이르는 유라시아대륙 중부, 북미 북서부에서 번식하고, 유럽 중·남부, 소아시아, 중국 북부, 한국, 일본, 북미 중서부에서 월동한다.
팥배 열매를 따먹던 홍여새와 황여새가 목이 마른가 보다. 무리지어 물가를 찾아가 목을 축인다. 배부르지도 않은지 다시 돌아와 계속해서 팥배나무 열매를 따먹는다. 열매를 먹고 배설하고, 수분이 적은 열매를 먹어 목이 마른지 물가를 찾는 일상이 하루 종일 반복된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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