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전쟁과 경영] 나폴레옹3세의 립스틱

바람아님 2020. 4. 22. 08:29
아시아경제 2020.04.21. 11:31
프란츠 빈터할터의 '나폴레옹3세' 초상화[이미지출처= 나폴레옹박물관/www.museonapoleonico.it]

 1870년 프랑스와 오늘날 독일의 전신인 프로이센 왕국 간 벌어진 보불전쟁은 당시 프랑스 지도자인 나폴레옹 3세가 무리하게 전선에 직접 뛰어들었다가 포로로 잡혀 싱겁게 끝난 전쟁으로 알려져 있다. 그해 7월 중순 개전 후 한 달 보름 만에 최고 지도자가 적의 포로가 된 프랑스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나폴레옹 3세는 모든 각료와 장군이 반대하는 상황에서도 삼촌인 나폴레옹 1세의 영광을 계승한다는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직접 출전을 고집했다가 참패했다. 한 번도 전쟁터에 나가본 적이 없던 그는 전장에서 울려 퍼지는 대포 소리와 옆에서 총탄에 맞아 죽어나가는 병사들을 보고 혼비백산해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못했다.


함께 출전한 장군들은 단 한 번 전투를 지휘해보고 입술이 파랗게 질린 나폴레옹 3세에게 병사들이 동요한다며 평소 즐겨 바르던 립스틱이라도 바르고 나오라고 일갈했다. 이는 나폴레옹 3세가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늘 화장을 하고 대중 앞에 나서던 것을 비꼰 말이었다. 당대 이미지 정치의 대가로 불리며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 하나로 정권을 잡았다는 나폴레옹 3세. 그의 실체를 보고 병사들이 느낀 실망감과 충격은 매우 컸다.


그는 전쟁 전까지 프랑스 내에서 정파를 가리지 않고 모든 국민에게 인기를 끌던 지도자였다. 그는 나폴레옹 1세의 조카로 늘 삼촌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며 대외 강경 정책으로 보수파의 사랑을 받았고, 한편으로 독일에서의 오랜 망명 생활로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높은 소양을 보여주며 진보 세력 사이에서도 지지율이 높았다. 이런 그에게 대중은 사람들을 중독시키는 힘이 있다며 '인간 아편'이라는 별명도 붙여줬다. 이렇게 능수능란한 이미지 정치에 힘입어 그는 친위 쿠데타를 통해 대통령에서 황제가 될 수 있었고 18년이라는 오랜 기간 장기 독재를 이어갔다.


하지만 결국 그 이미지가 자신의 발목을 잡았다. 그는 전쟁의 승패보다 자신의 친정 선포로 높아질 지지율에 취해 어리석은 결정을 했다. 더구나 경험도 전무한 전투 지휘 한 번에 넋이 나가 적군에 포위된 일주일간 아무런 명령도 내리지 못하고 항복했다. 실제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이미지로만 쌓아 올린 그의 명성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