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5.04 조동성 국립인천대학교 총장)
재택근무·온라인 경영 확산·정착, 기업 문화 대격변 일으킬 듯
중간 관리자 몰락, 성과 위주 평가… 투명하고 효율적인 생태계
개인 위주 문화에 협동심은 경쟁심으로… 도전·부작용 만만찮아
대학도 기존 서열 파괴되고 평준화, 스스로 존재이유 찾아야
조동성 국립인천대학교 총장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종식된 이후를 '포스트 코바(Post Cova)', 줄여서 PC라고 부를 수 있겠다.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는 속담처럼 우리나라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먼저 겪으면서 이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재난 관리 선진국이 되었다.
이 여세를 몰아 PC도 가장 먼저 준비하는 PC 선진국이 되자.
20여 년 전 창원의 한 특수강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굉음 속에서 상급자 지휘하에 수많은 직공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이게 바로 산업 현장의 다이내믹한
모습이구나"라고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그다음 방문한 미국의 특수강 공장은 전혀 달랐다.
포크리프트로 압연 코일을 운반하는 운전기사들만 보일 뿐 다른 직공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게 바로 자동화구나"라고 느꼈다.
이어 일본의 특수강 공장에선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깜깜한 공장 안 통제실에서 직원 두 명이 빨간 불이 수백 개 켜져 있는 패널을 응시하고 있었다.
'무인 공장의 극치'를 깨달았다.
연구소 역시 환경에 따라 변하고 있다.
바이오 분야 프로젝트를 위해 처음 방문했던 한 연구소에서는 수많은 연구원이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그 후 방문한 연구소에서는 방진복을 입은 연구원 몇 명이 거대한 연구 장비를 조작하고 있었다.
최근 인천대가 시니어 특훈 교수로 모셔온 바이오 분야의 세계적 대가 김성호 버클리대 교수는 연구 공간이
몇 평 필요하냐는 질문에 "나의 실험은 모두 노트북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답변했다.
사무실은 공장·연구소와 비교하면 변화 속도가 느렸다.
출입문에서 제일 먼 곳부터 부장, 대리, 사원 순으로 배치한 십여 년 전 사무실과 비교하면
최근에는 패널로 가려진 곳에 부장이 앉아 있고 나머지 직원들도 칸막이로 나뉜 공간에서 근무하는 정도다.
/일러스트=이철원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사무실 정경을 무인 공장, 노트북 안으로 들어간 연구실과 흡사한 모습으로 바꿔놓고 있다.
PC의 가장 큰 특징은 재택근무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회사 1089개 중 40.5%가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앞으로 이 비율은 점점 높아질 것이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경영은 기업 문화에 세 가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첫째, 의사 결정 속도가 빨라지고 효율성이 대폭 증대된다.
최근 들어 보고 단계가 줄고 온라인 결재도 사용되고 있으나, 중요한 결재 때는 실무자와 최고 결재권자 사이에
중간 관리자의 대면 보고가 여전히 존재한다. 재택근무는 이러한 시스템을 송두리째 바꾼다.
인터넷상에서 실무자가 중간 관리자와 최종 결재권자에게 동시에 보고함으로써 중간 관리자의 몰락과 함께
수직적 피라미드 조직이 붕괴하고 피자같이 생긴 수평적 조직이 자리 잡는다.
둘째, 구성원에 대한 평가가 공정해진다. 중간층이 사라지면서 직원들에 대한 정성 평가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인사팀은 인터넷으로 전달되는 성과만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모든 것이 공개되고 기록되는 이런 상황에서는 비윤리적 행태, 부정행위가 크게 줄어든다.
또한 아직도 일부 존재하는 성희롱과 폭언이 사라지고 파벌적 행태가 줄어든다.
셋째, 개인별 성과 차이가 뚜렷하게 구별된다.
객관적 평가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직원 간 평가도 생산성에 따라 극명하게 갈리게 된다.
그러나 재택근무로 인한 부작용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조직 중심의 분위기가 사라지고 개인 기반의 문화가 싹튼다.
협동심은 경쟁심으로 대체되고, 소소한 비리가 사라지는 대신, 시스템 조작에 의한 대규모 부정이 기업을 일순간에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 재택근무가 대세가 되는 PC 시대는 기업 환경을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바꾼다.
동시에 조직 문화와 전통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도전을 제기한다.
PC를 맞아 우리 기업들은 새로운 인터넷 문화, 온라인 인간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하는 책임과 기회를 갖게 된다.
대학도 예외일 수 없다.
온라인 교육이 대세가 되는 과정에서 과거 6개월 단위로 이루어지던 의사 결정은 1~2주 단위로 빨라졌다.
학생 평가 시스템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교수의 자발적 역량이 강조되고 있다.
반면 교수와 학생의 인간적 유대가 공식적이고 건조한 관계로 바뀌고, 작은 시스템 오류가 커다란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대학 교육의 온라인화는 모든 대학을 출발점에서 새롭게 뛰게 하는 평준화를 가져왔다.
기존의 대학 서열은 파괴되고, 대학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한다.
대학 사회에도 각 대학의 특징을 강조하는 차별화가 관건이다.
이에 대한 준비는 대학 각자의 몫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04/20200504028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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