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경철 서울대 교수·
- 서양근대사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말의 기원은 14세기 페르시아의 시인 아미르 호스로우 델라비의 민담집 '8개의 천국'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세렌딥(스리랑카)의 왕자 세 명이 왕위를 물려받지 않겠다고 했다가 나라에서 쫓겨났다.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던 어느 날, 낙타를 잃어버린 한 아프리카인을 만났다.
세 소년은 낙타를 보지도 않았지만 자세히 설명한다.
그 낙타는 애꾸고 이빨이 하나 빠졌고 다리를 저는데, 한쪽에는 기름, 다른 쪽에는 꿀을 싣고 있으며, 임신한 여인이 곁에 따라간다는 것이다. 낙타 주인은 이들이 낙타를 훔쳤다고 생각하고 국왕에게 고발했다.
얼마 후 낙타를 도로 찾아 이들이 감옥에서 풀려나오자 왕은 어떻게 보지도 않은 낙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의 답은 이렇다. 길가의 왼쪽 풀만 뜯어먹었으니 낙타의 오른쪽 눈이 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뜯어먹은 풀이 일부 떨어져 나온 것으로 보아 이가 빠졌다.
한쪽 발자국이 다른 쪽 발자국보다 약하니 다리를 절고 있다.
길 한쪽에는 개미들이 모여들고 다른 쪽에는 벌이 부지런히 오가니 이는 기름과 꿀을 조금씩 흘렸기 때문이다.
그 옆에 난 샌들 자국으로 보아 여자가 낙타를 몰고 가고 있다.
게다가 축축한 흔적이 있는데 냄새를 맡아보니 사내의 욕정을 불러일으키는 데다가,
땅에 손을 짚고 일어난 표시도 있으니 그 여자는 분명 임신부다.
감탄한 왕이 세 소년에게 진수성찬을 대접했다. 다 먹고 난 후 세 소년이 다시 감상을 이야기한다.
포도주에 사람 피의 맛이 나고, 양고기에는 개의 피가 섞여 있으며, 왕은 요리사의 아들임이 틀림없다.
왕이 알아보니 포도밭이 예전에는 공동묘지였고, 요리 재료인 암양이 어릴 때 개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것이다.
더구나 모후께서 과거에 요리사의 꼬임에 넘어가셨노라고 고백하시는 게 아닌가.
'왕께서는 매번 요리와 빵 이야기만 하시니, 필경 왕관에서 나신 게 아니라 빵틀에서 나신 겁니다.'
국왕은 이 지혜로운 왕자들을 고향 세렌딥에 돌아가도록 했다.
이 페르시아 이야기는 유럽에서 큰 인기를 누려,
볼테르의 '자디그'로부터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까지 자주 인용되었다.
지금은 '의도적으로 연구하지 않았는데도 훌륭한 결과를 발견해내는 능력' 정도의 뜻으로 사용된다.
그런 명민한 능력을 갖춘 왕자들은 고향에 돌아가서 훌륭한 왕이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