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그림, 詩에 빠지다]호우시절, 사랑한다면 봄비처럼-두보 춘야희우

바람아님 2014. 2. 14. 09:45
봄밤에 내리는 반가운 비(春夜喜雨)
두보(杜甫)

반가운 비가 시절을 알아(好雨知時節)
봄이 되니 내리네(當春乃發生)
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와(隨風潛入夜)
만물을 적셔주며 아무런 소리도 없네(潤物細無聲)
들판의 오솔길은 구름이 낮게 깔려 어둡고(野徑雲俱黑)
강 위에 뜬 배는 등불만 비추네(江船火燭明)
새벽에 붉게 젖은 곳을 보니(曉看紅濕處)
금관성이 꽃으로 겹겹이 덮여 있네(花重錦官城)
심사정 ‘강상야박도(江上夜泊圖)’ 1735년. 비단에 먹. 153.2×61㎝. 국립중앙박물관

봄 가뭄이 극심하다. 푸석거리는 대지 위로 흙먼지만이 풀풀 날린다. 싱싱하게 세상을 향해 내달리던 여린 새싹들이 허기를 견디지 못하고 성장을 멈추었다. 올봄도 헐벗음에서 시작해야 하는가. 배가 고픈 사람들은 산으로 들로 나서보지만 거기도 가물기는 마찬가지여서 주린 배를 채우기는 여의치 않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 보니 반가운 비가 내렸다. 행여 고단한 잠을 깨울까 봐 봄비는 바람 따라 몰래 들어와 소리 없이 만물을 적시고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비는 더 오려는 듯 새벽 들판의 오솔길은 아직도 어둑어둑하다. 흐린 구름 사이로 강 위에 뜬 배의 등불만이 반짝거린다. 새벽이 걷히면서 보니 밤새 내린 비로 촉촉해진 붉은 꽃이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다. 뭐라 언질을 해준 것도 아닌데 시절을 알고 내려준 봄비가 더없이 고맙고 기쁘다. 금관성은 쓰촨(四川)성의 수도인 청두(成都)의 별칭이다.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두보(杜甫·712~770)가 가뭄 끝에 내린 반가운 비를 보고 그 감흥을 노래했다. 이 시가 특히 가슴에 와닿은 이유는 두보의 시이기 때문이다. 두보는 생애의 대부분을 객지를 떠돌며 살았는데 평생 배고픔 속에서 병마와 씨름하며 시를 지었다. 가장이 집을 비운 사이 사랑하는 아들은 굶어 죽었다. 중국 문학사에는 시로 이름난 사람이 별처럼 많지만 두보의 시가 특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공감을 얻는 것은, 그의 시 속에는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힘 없는 민초들의 직접적인 아픔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春夜喜雨(춘야희우)’ 또한 봄밤에 내리는 비를 보고 제3자적 입장에서 얄팍한 감상을 읊은 시가 아니다. 비가 대지를 적시자 이제 우리는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옆에 있는 사람을 와락 껴안고 싶은 반가움이 담겨 있는 시다. 허기를 채워주는 시다.
   
   
   강가에 배가 있는 풍경인 줄 알았더니
   
   ‘춘야희우’에는 봄, 밤, 비, 들판, 오솔길, 구름, 강, 배, 등불, 꽃 등의 시어(詩語)가 담겨 있다. 이 시어로 빚어낸 봄날 새벽의

풍경을 화가는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해냈을까. 심사정(沈師正·1707~1769)의 ‘강상야박도(江上夜泊圖)’는 두보의 ‘춘야희우’ 중

‘들판의 오솔길은 구름이 낮게 깔려 어둡고/ 강 위에 뜬 배는 등불만 비추네’라는 시구를 소재로 그린 작품이다.
   
   그림은 전경·중경·후경이 지그재그로 구성되어 변화와 깊이가 느껴진다. 전경의 언덕에는 종류가 다른 나무들을 여러 그루

배치했고, 중경에는 버드나무 아래 사공이 탄 배를, 후경의 원산(遠山)에는 미점(米點)을 찍어 습윤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이는 원말(元末) 사대가(四大家)에서 명대(明代)의 오파(吳派)로 이어지는 남종화풍(南宗畵風)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특징

이다. 담백한 필치의 구성과, 농묵(濃墨)과 담묵(淡墨)이 빚어내는 조화로운 화면은 심사정이 조선 후기에 남종화의 대가로

인정받는 이유를 말해준다.
   
   그림은 ‘반가운 비’를 그렸음에도 반가운 기색이 전혀 없다. 어둠 때문에 아직 은밀한 밤비의 방문을 실감하지 못했기 때문일

까. 사공은 새벽부터 손님을 기다리느라 배에서 졸고 있다. 억지로 졸음을 참으며 꾸벅거리는 사공의 어깨 위로 무거운 구름이

내려 앉았다. 그 풍경이 고즈넉하다 못해 적막하다. 사공 뒤에서는 새벽안개가 산과 마을의 이음새를 덮은 채 구름 속으로 잦아

든다. 늙은 바람을 따라 밤에 몰래 들어온 봄비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하다. 잠시 후 어둠이 걷히고 나면 붉게 젖어

있는 꽃으로 드러나리라. 드러나면 알게 되리. 간밤에 내린 비가 꽃과 나무에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는지를.
   
   그림의 주제가 된 시구는 화면 맨 위에 적혀 있다. 시구를 무시하고 그림만 보게 되면 ‘밤에 강가에 배를 대다’라는 뜻의 ‘江上

夜泊(강상야박)’이라는 그림 제목이 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작가가 그림 속에 시구를 적어 놓은 이상, 그림 제목을 ‘강상야박’이

아닌 ‘춘야희우’라고 부르는 것이 더욱 운치가 있을 것 같다. ‘춘야희우’라는 제목을 붙였을 경우, 그것이 두보의 시인 줄 아는

사람은 시 전체가 주는 울림을 떠올리며 그림을 볼 것이다. 두보의 시인 줄 모르는 사람은 강가에 배가 있는 풍경인데 왜 ‘봄밤에

내리는 반가운 비’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의아해서 시를 찾아보게 될 것이다. 이래저래 시와 그림을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제목이

좋지 않겠는가.
   
   
   누구의 가슴에 봄비처럼 스며들까
   
   허진호 감독이 만든 한·중 합작 영화 중에 ‘호우시절(好雨時節)’이 있다. 정우성과 가오위안위안(高圓圓)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 영화는 두보초당(杜甫草堂)이 있는 쓰촨성을 배경으로 두 남녀의 애잔한 사랑을 그렸다. ‘때를 알고 내리는 비처럼, 다시

그 사람이 온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옛사랑을 희미한 기억 속에 덮어두고 사는 연인들에게 그렇게 묻는 영화다. 영화

는 쓰촨 대지진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주인공이 두보초당에서 우연히 첫사랑을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 내용인데

배경만 두보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영화 제목 또한 두보의 ‘춘야희우’의 첫 구절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에서 따왔다.
   
   여기서 ‘호우(好雨)’는 장대비를 뜻하는 ‘집중호우(集中豪雨)’와는 다르다. 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와 소리 없이 만물을 적셔

주는 조용하고 수줍은 봄비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가슴에 ‘호우(好雨)’처럼 살포시 젖어들어야 한다. ‘호우(豪雨)’

처럼 작달비로 마구 퍼부으면 부담스럽다. 봄이 되니 반가운 비가 시절을 알아 내리는 것처럼 우리들의 사랑도 봄비처럼 팍팍한

가슴을 적셔 주었으면 좋겠다. 심사정의 ‘강상야박도’ 또한 호우(好雨)처럼 슬그머니 우리의 가슴속에 스며드는 작품이다.

두보의 시가 천 년의 세월을 넘어 심사정의 그림으로 환생했다면, 천삼백 년이 흐른 뒤에는 남녀간의 사랑을 얘기하는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다. 다음에는 어떤 사람의 가슴에 비를 뿌려 꽃을 피울까. 누구의 가슴속에 봄비처럼 스며들어 피리를 불고 춤을

추게 할까.

 

 조정육
   
  홍익대 한국회화사 석사, 동국대 박사 수료. 성신여대 대학원, 동국대 대학원 강의. 저서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거침없는 그리움’ ‘꿈에 본 복숭아꽃 비바람에 떨어져’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 ‘우리나라 대표 그림’ ‘그림공부, 사람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