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외설과 예술 사이…현대 회화 길을 연 '마네의 도발' [송주영의 맛있게 그림보기]

바람아님 2023. 2. 7. 05:42

한국일보 2023. 2. 7. 04:31

<14> 현대 회화의 시작, 폴리-베르제르의 미스터리

편집자주
아무리 유명한 예술작품도 나에게 의미가 없다면 텅 빈 감상에 그칩니다. 한 장의 그림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맛있게 그림 보기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림 이야기입니다. 미술교육자 송주영이 안내합니다.


폴리-베르제르에서 찍은 사진 같은 그림
지금 당신은 타임머신을 타고 1882년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고, 파리9구역에 있는 예술가들의 아지트, 폴리-베르제르의 문을 연다. 자욱한 담배 연기 가득한 홀 안에는 시인, 화가, 음악가들이 취기 어린 목소리로 예술과 낭만, 사랑에 대해 열변 중이다. 왼편 천장에는 초록 구두를 신은 무용수가 그네 곡예를 하고 있다. 여종업원이 있는 바(bar)에 다가간다. 성모 마리아처럼 두 팔을 벌린 채 카운터 끝을 짚고 서 있는 검은 옷의 여종업원이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 아니, 다른 곳을 보고 있나? 웃음기가 없는 그녀의 얼굴을 보던 당신은 21세기에서 가져온 카메라를 들어 찰각 셔터를 누른다. 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2023년 현재로 되돌아온 당신의 카메라에 담겨 있는 장면이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 '폴리-베르제르의 바'와 똑같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어디가 이상한지 발견했는가?

(중략)
폴리-베르제르의 미스터리
가장 큰 수수께끼는 모자 쓴 사내의 실제 위치다. 거울에 비친 남성은 여종업원과 대화를 나누는 듯 보인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남자는 여종업원 바로 앞에 있어야 하는데, 없다. 화가는 의도적으로 남성을 그리지 않았던 것일까? 이 사내는 지금 술을 사는 중인가, 여자를 사는 중인가? 술병 로고와 닮은 여자 가슴의 꽃, 금박이 있는 검은 샴페인병은 검은 드레스의 금발머리 여종업원을 의미하는가? 거울에 비친 술병들의 위치도 이상하다. 100년이 넘도록 이 그림은 논란 속에 있었다. 사람들은 “마네는 보이는 대로 그린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원하는 것을 변형해서 그렸네! 이 그림은 논리적으로 틀렸지만 오히려 그래서 현대적이다!”라고 하거나, “아니야, 이건 그냥 마네의 실수야. 죽기 1년 전이라 많이 아팠어.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서 틀릴 수도 있겠지”라고 했다.

마네는 현대적 편집기술을 회화에 도입한 연출가
마네가 틀리게 그린 것이 아니었다. 그는 보이는 대로 그렸다. 다만 화면 크기를 ‘의도적으로’ 편집했을 뿐이다. 술병 로고와 샴페인 색상을 닮은 여성의 피곤한 모습에서 소란스럽던 소비사회의 시작을 느낄 수도 있고, 거울에만 비친 남성의 모습에서 자본주의의 은밀함을 상상할 수도 있다. 이 여성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사람과 관람자가 같은 위치에 서 있다는 착시를 주고 싶은 마네의 농익은 농담일 수도 있고, 자신의 연인에게 시선을 주고 있는 남성에 대한 위트일 수도 있다. 여러 의도 중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마네는 끝까지 이슈 만드는 일에 진심이었다는 것, 무려 100년이 넘도록 사람들을 수군거리게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마네가 21세기를 살았다면 영화 감독이겠다. 현실 비판을 담은 시나리오를 쓰고 아름다운 여배우들을 캐스팅하고 뛰어난 편집기술과 연출력을 가진 예술가다. 과연 현대 예술의 길을 터준 인물이라 할 만하다.

https://v.daum.net/v/20230207043102117
외설과 예술 사이…현대 회화 길을 연 '마네의 도발' [송주영의 맛있게 그림보기]

 

외설과 예술 사이…현대 회화 길을 연 '마네의 도발' [송주영의 맛있게 그림보기]

편집자주 아무리 유명한 예술작품도 나에게 의미가 없다면 텅 빈 감상에 그칩니다. 한 장의 그림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맛있게 그림 보기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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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마네, '폴리-베르제르의 바', 1882년, 런던 코톨트 갤러리 소장

 

폴리-베르제르의 바'의 시노그래피(Photograph by Greg Callan 2000, Courtesy of Malcolm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