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현실과 이상의 괴리, 가위질할 수 있다면[정하윤의 아트차이나]<25>

바람아님 2023. 3. 31. 00:55

이데일리 2023. 3. 31. 00:02

▲가위로 내면세계 드러낸 '마오쉬후이'
따뜻한 초기작 '낭만적 풍경'은 잠시
실력 있지만 주류진입 실패 등 좌절
절박함 담은 거친 붓질로 이름 알려
의자에 축처진 '가장' 그린 연작 이어
가장 자리에 대신 그려넣은 '가위'가
세상 난관 끊고 싶은 도구로 등장해

중국 그림을 보지 못한 지 한참입니다. 한국 미술시장이 자못 뜨거웠던 지난해와 올해, 세계의 작가와 작품이 우리를 기웃거리던 때도 중국은 없었습니다. 중국 ‘큰손’ 컬렉터의 규모와 수가 미국을 제쳤다는 얘기도 이미 2~3년 전입니다. ‘으레 미술은, 그림은 그런 것’이라며 반쯤 우려하고 반쯤 체념했던 한국화단을 뒤흔든, 기발한 감수성으로 뒤통수를 내리쳤던 중국 작가들이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예술을 예술이 아닌 잣대로 들여다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술에 기대하는 희망 역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정치에도 경제에도 답이 없다 생각할 때 결정적인 열쇠를 예술이 꺼내놨습니다. 오랜시간 미술사를 연구하며 특히 중국미술이 가진 그 힘을 지켜봤던 정하윤 미술평론가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지점 그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때마침 ‘한중 수교 30주년’입니다. 다들 움츠리고 있을 때 먼저 돌아보는 시간이고 먼저 찾아가는 길입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깊고 푸른 ‘아트차이나’로 안내합니다. <편집자 주>


시뻘건 몸체. 녹슨 칼날. 뾰족하고 거대한 몸집의 가위가 화면을 지배한다. 어째 섬뜩한 느낌이 드는 이 그림(‘붉은 가위’ 2001)은 중국 화가 마오쉬후이(毛旭輝·67)가 그렸다. 30년 가까이 가위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이지만 처음부터 이런 그림을 그렸던 것은 아니다. 딱히 서늘한 그림을 그릴 이유도 없었다. 성장 과정에서도 별 특이사항이 없었고, 세상이 그에게만 특별히 가혹한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마오쉬후이는 온화한 날씨 덕에 ‘중국의 하와이’라고 불리는 쿤밍 지역에서 자랐다. 그래서인지 마오쉬후이의 초기작은 인상주의 뺨칠 만큼 아름다운 색채로 그린 따뜻한 풍경화였다. 그런 그가 돌연 위협적인 가위를 그리게 된 까닭은 뭘까. 화가의 생애를 짚어보는 것이 그 이유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거다.

 그는 마오쩌둥 시대 여느 청년들처럼 10대 후반부터 노동자로 일했다. 주요 업무는 백화점 창고를 지키는 것. 여덟 시간의 노동, 두 시간의 정치교육, 이어지는 저녁 회의가 마오쉬후이의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한 친구가 연필 소묘에 관한 책을 그에게 선물했다. 평소 마오쉬후이가 미술에 대한 관심을 내보여서인지 친구가 먼저 그의 소질을 알아봤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작은 책이 10대 후반의 이 청년을 제대로 자극했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책을 받은 이후 마오쉬후이는 틈나는 대로 데생을 연습했다. 독학이었음에도 실력은 쑥쑥 자랐다.


https://v.daum.net/v/20230331000225631
현실과 이상의 괴리, 가위질할 수 있다면[정하윤의 아트차이나]<25>

 

현실과 이상의 괴리, 가위질할 수 있다면[정하윤의 아트차이나]<25>

마오쉬후이의 ‘붉은 가위’(2001). 지금껏 30년 남짓 가위를 테마로 작업해온 마오쉬후이의 ‘가위 시리즈’ 중 한 점이다. 별다른 치장이나 군더더기 없이 가위 하나로만 화면을 꽉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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