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나르시스의 이야기다. 꿈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긴 스페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나르시스의 변형’에도 바로 이 청년이 등장한다.
2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모키수면센터에 모인 수면과 정신분석, 미술전시 전문가들은 미술작품에 나타난 화가의 꿈과 무의식 세계를 들여다봤다.
○ 꿈은 뇌가 만들어내는 이야기
달리의 작품에서 물가에 있는 노란색 형체가 바로 나르시스다. 바로 옆에는 손가락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희한하다. 나르시스와 손가락이 정말 닮았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은 이것이 바로 달리 특유의 표현기법이라고 설명했다.
“손가락을 나르시스와 닮은꼴로 그리고 손가락에 얹혀 있는 알에 수선화까지 표현해 이미지를 서로 겹쳐 놓았어요. 한쪽 이미지(나르시스)가 다른 쪽(손가락)으로 전이된 거죠.”
신홍범 코모키수면센터 원장은 달리의 생각이 아마 망상에 가까웠을 거라고 진단했다.
“보통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봐 넘길 이미지에서 왜곡된 다른 형상을 잡아내는 게 망상 증상이에요. 예를 들어 산 너머로 지는 해가 시뻘건 거인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달리는 이런 현상이 꿈에서 특히 많이 나타난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다양한 꿈을 꾸기 위해 자기 전에 코 주위에 향수를 뿌리거나 음악을 틀어 놓는 등 갖가지 방법을 시도했다. 신 원장은 달리의 이런 시도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고 했다.
“후각이나 청각 같은 감각신호는 꿈에 많은 영향을 미쳐요. 현대 과학에서 말하는 꿈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다양한 신호를 대뇌가 하나의 그럴듯한 이야기로 꾸며 내는 겁니다. 향수를 뿌리면 뇌에서 그 향기가 등장하는 꿈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겠죠.”
꿈은 보통 얕게 잠든 렘(REM) 상태에서 꾼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신 원장은 1960년대에 이미 비(非)렘 상태에서도 많은 꿈을 꾼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했다.
“다만 수면 상태에 따라 꿈의 내용이 달라요. 렘수면 때는 초현실적인 꿈이 대부분이지만 비렘수면 때는 의식이 반영된 현실적인 꿈이 많죠. 상사에게 혼나거나 외상값 독촉에 시달리는 꿈처럼 말이죠. 달리도 비렘수면에서 꾼 꿈을 그렸을 가능성이 커요. 현실세계에서 나르시스의 신화를 듣고 잠들었는데, 이것이 꿈속에서 변형된 이미지로 나타났을 겁니다.”
○ 시각능력 뛰어날수록 꿈 잘 기억해
스위스 출신의 영국 화가 헨리 퓨젤리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배신당한 뒤 꿈을 꿨다. 이 관장은 이를 그린 작품이 바로 ‘악몽’이라고 소개했다.
“에로틱한 포즈로 누워 있는 여성이 퓨젤리의 애인이에요. 여성의 배 위에 앉은 반은 원숭이, 반은 고양이 같은 괴물은 악마입니다. 악마가 타고 온 말의 눈 좀 보세요. 금방 튀어나올 것 같죠? 남성의 흥분된 느낌을 표현했어요. 전통적으로 말은 성(性)을 상징하니까요.”
신동근 용인정신병원 교수는 이 작품에 화가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두 가지가 숨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성욕과 공격성이에요. 말은 여인에 대한 성적 욕구가 남아 있다는 의미예요. 하지만 배신당했으니 한편으론 짓밟고 싶었겠죠? 이런 감정을 담고 있는 게 저 악마입니다.”
퓨젤리가 굳이 말과 악마라는 상징을 사용한 이유는 뭘까. 신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처음 뇌에서 만들어진 꿈과 사람들이 기억하는 꿈은 달라요. 꿈이 처음 만들어질 땐 무의식이 그대로 적나라하게 반영되지만(잠재몽) 뇌가 이를 현실에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변형해요(발현몽). 퓨젤리는 발현몽을 떠올리고 이 작품을 그렸을 겁니다.”
사물의 시각적 특징을 유달리 잘 간파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많은 꿈을 기억한다고 알려져 있다. 신 원장과 신 교수는 달리나 퓨젤리가 꿈을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린 것도 이 덕분일 것으로 추측했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 이 기사에는 국제수면전문의인 신홍범 코모키수면센터 원장과 정신과전문의인 용인정신병원 신동근 교수, 미술전시기획자인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이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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