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SUNDAY 2024. 3. 16. 00:18 수정 2024. 3. 16. 02:01
석작. 한 세대 전만 해도 서민들 가정에서 흔히 쓰이던 물건인데 이제는 그 이름조차 아는 이가 드물다. 나무로 만든 궤나 농이 발달하기 이전부터 생활용품을 담는 용도로 사용되던 바구니 함이다. 고리라고 하면 좀 더 익숙할까. 주로 버드나무가지로 엮어서 버들고리란 이름으로도 불리었다.
몇 해 전 사진가 한상재는 노모가 홀로 지내시던 친정집에서 석작 하나를 발견했다. 당시 아흔을 넘긴 어머니는 병원 침대에 누워, 언제 다시 집으로 돌아올지 기약할 수 없었다. 가끔씩 빈집에 들러 화분에 물을 줄 때마다 어머니의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이 초조했다. 딸인 자신이 엄마의 물건을 챙기고 정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25년간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다 퇴직하고, 갓 카메라를 손에 든 때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사진으로 뭔가를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석작을 열기 전까지는.
낡은 석작 안에는 어머니의 세월이 응축되어 담겨 있었다. 손 글씨로 ‘미싱’이라고 써 붙인 재봉틀기름에서부터 쓰다 남은 공책으로 만든 가계부와 돌아가신 아버지의 은수저, 브로치 같은 작은 장신구들까지....산호색 비단치마를 입었을 때 엄마는 멋쟁이 소리를 들었노라고 했다. 색 바랜 치마 위에 엄마가 좋아하는 보라색 꽃송이들을 올려 꽃무늬를 만들고 사진에 담았다. 엄마의 아름다운 시절에 바치는 딸의 헌사였다.
https://v.daum.net/v/20240316001856720
[사진의 기억] 엄마의 꽃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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