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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의 말과 글] [396] 기도에 대하여

바람아님 2025. 3. 8. 00:48

조선일보  2025. 3. 7. 23:50

어릴 적, 기도 중간에 실눈을 뜨고 기도하는 사람 얼굴을 보는 습관이 있었다. 쏟아지는 소망의 내용이 길수록 사람은 저마다 절박함이 깊구나 싶어 가슴이 울렁였다. 그때 내 기도는 주로 원하는 물건 목록이었다. 간절함을 담아 기도하면 이루어진다고 믿은 어린 신앙은 점점 물건뿐 아니라,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게 해달라는 소망으로 이어졌다. 직장인이 되자 기도 시간만큼 한탄의 목록도 길어졌다. 문학 공모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면, IMF만 없었다면,....그러니 지금까지 내 간절한 기도의 내용은 모두 틀린 것이었다. 

이제 내 힘으로 어쩔 수 없을 때 기도한다. 한없이 추락하던 어느 날엔 위로를 줄 단어를 찾기 위해 기도한다. 기도의 말이 하늘에 닿기 전, 우선 내 귀와 가슴에 닿기를 원한다. 시인 ‘타고르’는 “고통을 멎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할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별하고,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면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지혜를 바란다.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실망하는 이를 많이 봤다. 그러나 포기가 곧 실패는 아니다. 때론 멈추는 게 더 큰 용기일 수 있다....이젠 기도가 스스로에게 보내는 위로와 다짐이란 생각이 든다.

만약 기도하는 모든 이의 소망이 이루어진다면 세상은 좋아질까. 우리 삶에 맑은 날만 이어진다면 이 땅은 꽃과 나무 없는 사막이 될 것이다. 어둠 속에서는 별을 볼 수 있고, 빗속을 통과하면 무지개를 볼 수 있다.


https://v.daum.net/v/20250307235016588
[백영옥의 말과 글] [396] 기도에 대하여

 

[백영옥의 말과 글] [396] 기도에 대하여

어릴 적, 기도 중간에 실눈을 뜨고 기도하는 사람 얼굴을 보는 습관이 있었다. 쏟아지는 소망의 내용이 길수록 사람은 저마다 절박함이 깊구나 싶어 가슴이 울렁였다. 그때 내 기도는 주로 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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