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詩와 文學

가슴으로 읽는 시 - 아카시아

바람아님 2014. 6. 22. 22:48

(출처-조선일보 2014.05.24 문태준 시인)


가슴으로 읽는 시 일러스트    아카시아


   먼 별에서 향기는 오나
   그 별에서 두 마리 순한 짐승으로
   우리 뒹굴던 날이 있기는 했나
   나는 기억 안 나네
   아카시아

   허기진 이마여
   정맥이 파르랗던 손등
   두고 온 고향의 막내누이여


   ―김사인(1955~ )


봄바람 속에 아카시아 향기가 가득하다. 

아카시아 꽃은 이삭 같고, 원뿔 같고, 흰쌀밥 한 덩이 같다. 

꽃이 활짝 피어 나무 전체가 전등을 켠 듯 환하다. 

아카시아는 벌이 꿀을 빨아 오는 밀원(蜜源)이기도 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카시아 꽃을 따먹던 날이 있었다. 배고픈 때가 많았다. 얼굴에 궁기(窮氣)가 흐르던 때였다. 

이 시에도 가난의 기억이 배어 있다. 창백하고 허약한 막내 누이가 아카시아 꽃에 빗대어져 있다. 

아카시아 꽃을 보면서 얼굴이 푸석푸석하고 하얗고, 손등에는 정맥이 파르르 내비치던 막내 누이를 간절하게 떠올리고 있다. 

이 시를 읽은 후에 아카시아 꽃을 다시 보니 정말 저 꽃 속에는 핏기가 없는 핼쑥한 얼굴이 하나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