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08.20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귀명(趙龜命)의 '동계집(東谿集)'에 '정체(靜諦)'란 글이 있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길어올린 깨달음의 단상을 포착했다.
그중 '정좌(靜坐)'의 몇 구절을 읽어본다.
"고요히 앉아 내면을 응시하면 마음에서 환한 빛이 나와 마치 유리처럼 투명하게 비쳐
"고요히 앉아 내면을 응시하면 마음에서 환한 빛이 나와 마치 유리처럼 투명하게 비쳐
잡념이 생겨나지 않는다. 비록 다른 소리가 귀를 스쳐가도 아예 들리지 않는다.
(靜坐內視 心體光明, 如琉璃映徹 雜念不生. 雖過耳聲音, 了無將迎.)"
"묵묵히 앉아 향을 사를 때 창밖에서 새소리가 들리면 또한 절로 마음이 기쁘다.
(默坐燒香, 聞窓外禽聲, 亦自怡悅.)"
"앞일을 알기란 어렵지 않다. 마음이 고요하면 앞일을 알 수 있다.
보통 사람은 잠잘 때만 마음이 잠깐 고요해져서 꿈속에서 앞일을 알게 되는데 하물며 늘 고요한 사람이겠는가?
(前知匪難, 心靜斯前知矣. 衆人寐時, 心乍靜, 夢猶前知, 况常靜者乎?)"
하루하루가 분답하기 짝이 없다. 약속을 해놓고도 날짜를 놓치기 일쑤요, 해야 할 일도 맥을 놓고 떠내려간다.
고요와 적막의 시간이 없는 탓이다.
다시 다음 한 구절에 가서 눈길이 멎는다.
다시 다음 한 구절에 가서 눈길이 멎는다.
"물이 지면 도랑을 이루고, 외가 익으면 꼭지가 떨어진다. 이 두 마디 말로 계교하는 마음을 고칠 수가 있다.
(水到渠成, 瓜熟蒂落, 兩語可醫計較心.)"
물이 자주 흘러 땅이 패자 봇도랑을 이룬다. 외는 익으면 꼭지가 똑 떨어진다.
시기가 무르익고 조건이 갖춰지면 굳이 작위해서 애쓸 것이 없다. 절로 이루어진다.
때가 아닌데 억지로 하려 드니 이룰 수도 없고 인생이 덩달아 피곤해진다.
다음 글은 스케일이 참 크다.
다음 글은 스케일이 참 크다.
"개벽하고 오랜 세월이 흐르면 높은 것은 무너지고 낮은 것은 메워진다.
무너지면 흙이 깎여 바위가 드러나고, 메워지면 길이 평평해진다.
아득한 후세에는 산은 더욱 기이해지고 다니는 길은 더욱 편리해질 것이다.
(開闢久, 高者崩, 卑者塡. 崩則土削而石露, 塡則道塗平. 後千萬世, 山益奇, 行路益利.)"
흙을 다 털어내고 바위만 남은 산은 더욱 기이해지고, 무너진 흙으로 메워진 길은 점점 평탄해진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억지로 안 된다.
빈틈을 고요로 채워야 길이 명료하게 보인다.
군더더기를 덜어낸 산이 그제야 우뚝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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