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정민의 세설신어 [125] 용종가소(龍鍾可笑)

바람아님 2014. 8. 19. 09:23

(출처-조선일보 2011.09.29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삼국사기' 온달 열전은 이렇게 시작된다. 

"온달은 고구려 평강왕 때 사람이다. 용모가 꾀죄죄하여 웃을 만했지만(龍鍾可笑), 속마음은 맑았다. 

집이 몹시 가난해서 늘 먹을 것을 구걸해 어미를 봉양했다. 찢어진 옷과 해진 신발로 저자 사이를 왕래하니, 

당시 사람들이 이를 가리켜 바보 온달이라 하였다." 온달은 실상 바보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그의 꾀죄죄한 겉모습만 보느라 정작 그의 맑은 속마음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울보 공주가 가출 이후 곡절 끝에 온달과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되었을 때, 공주는 가락지를 빼주며 말한다. 

"시장 사람의 말은 사지 마시고, 국마(國馬)로 병들고 말라 쫓겨난 놈을 골라서 사십시오." 

무슨 말인가? 시장 사람의 말은 살지고 번드르르해도 수레나 끌기에 딱 맞다. 

나라 마구간에서 쫓겨난 말은 혈통은 좋은데 말 먹이는 사람을 잘못 만나 병이 든 말이다. 

비루먹어 쫓겨났으나 타고난 자질이 훌륭한 말은, 겉모습은 꾀죄죄해도 속마음은 맑았던 온달과 같다.

중국의 문장가 한유(韓愈)는 '잡설(雜說)'에서 이렇게 말했다. 

'천하에 천리마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다만 그것을 알아보는 백락(伯樂)이 없었을 뿐.' 

백락은 명마를 잘 감별하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렇다. 

천하에 인재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그를 적재적소에 쓸 안목 있는 군주가 없었을 뿐. 번드르르한 겉모습만 보고 수레나 끌면 딱 맞을 시장 사람 말을 

비싼 값에 주고 사온다. 결국 장수를 태우고 전장을 누비기는커녕 제 배 채울 궁리나 하다가 매를 맞고 쫓겨난다. 

이것은 말의 문제인가, 주인의 문제인가?

중국음식점 배달원은 발도 못 뻗을 좁은 방에 살며 불우한 어린이를 도왔다. 

사람들은 그의 맑은 속마음은 못 보고, 철가방 들고 음식 배달하는 꾀죄죄한 겉모습만 보았다. 

대통령의 측근들은 잇단 금품 수수 의혹으로 연일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수레나 끌면 딱 맞을 돼지처럼 살진 시장 사람의 말이 저마다 천리마라며 난리를 친다. 

안목 없는 주인은 겉만 보고 비싼 돈 주고 덜컥 사 온다. 사료 욕심이나 내지 아무 쓸데가 없다. 

그 사이에 천하의 준마들은 나라 마구간에서 병들어 쫓겨나, 제 역량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수레나 끈다. 

부끄럽고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