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가슴으로 읽는 한시] 산중에 잠시 머물며

바람아님 2014. 8. 16. 08:16

(출처-조선일보 2014.08.16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산중에 잠시 머물며


산꼭대기는 차마 오르지 않는데
오르기 힘들어서는 결코 아니다.


산에 사는 사람의 눈을 가지고서는
인간 세상 바라보기가 두려워서다.


산 사람의 마음을 떠보려고
문에 들어가 술주정부터 부려봤으나


반가움도 불평도 끝내 안 보이니
진정한 고사임을 알아차렸다.



山中寓居 

高顚不敢上(고전불감상)
不是憚躋攀(불시탄제반)

恐將山中眼(공장산중안)
乍復望人寰(사부망인환)

欲試山人心(욕시산인심)
入門先醉奰(입문선취비)

了不見喜慍(요불현희온)
始覺眞高士(시각진고사)



[가슴으로 읽는 한시] 산중에 잠시 머물며

고려의 문호 이규보(李奎報·1168 ~1241)는 젊은 

시절 개성 천마산 아래에 살았다. 자주 산에 올랐고

그때 느낀 단상(斷想)을 짤막한 시 여러 편으로 

표현하였다. 단상이라고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깊이 있는 생각이 담겨 있다. 

정상은 일부러 등반하지 않는다. 힘들어서가 

아니다. 정상에 올라가 저 아래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면 다시는 그리로 

돌아가지 않을 것만 같다. 자칫 세상을 버리고 

영영 산속으로 들어갈지도 모른다. 산에는 

사람이 살고 있어 괜찮은 분인가 시험하고픈 

장난기가 동했다. 일부러 미친 척 불쑥 들어가 

다짜고짜 술주정을 해댔다. 하지만 끝내 화도 

안 내고 반가워도 안 한다. 세상 사람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래저래 산으로부터 멀어질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