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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렬 기자의 진심] 디자인 賢者가 된 강원도 촌놈

바람아님 2015. 2. 1. 19:50

(출처-조선일보 2015.01.31 최홍렬 주말뉴스부 차장)

삼성전자 디자인 혁신 위해 스카우트된 이돈태 전무


"비행기부터 냄비·걸레까지… 근사한 것보다 고객 만족감 주는 게 우선"

상식을 깬 逆발상
英서 비행기 좌석 두 개를 한 세트로 마주보게 배치
앞뒤 공간 넓혀 180도로 누울 수 있어

名品, 작은 디테일서 승부
제품 디자인 90%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승패는 나머지 10%에 달려… 디테일은 沒入 통해 완성

英회사 입사7년만에 CEO로
입사 초 허드렛일 도맡아… 열심히 일하는 것밖에
차별화할 방법이 없어 몇 년간 휴가 안 갔다

좋은 디자인의 조건
움직이는 과녁을 정확하게 맞히는 것이지
활 시위 당기는 힘 자랑이 아니다


"나는 촌놈이다. 디자이너라고 하면 다들 꽁지 머리에 독특한 스타일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나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나 나올 법한 산골 출신이란 것을 숨기지 않는다."

혁신적이고 효율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이돈태(47)는 이렇게 자기소개를 했다. 

인터뷰는 지난해 그가 영국 디자인 컨설팅 회사 탠저린(tangerine) 공동대표로 일하던 시절 이뤄졌다. 

당시 그는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일하고 있었다. 

최근 그는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 글로벌디자인팀장(전무)으로 스카우트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이제 막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인지 말 한마디도 조심스러워했다.

이돈태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 글로벌디자인팀장(전무)은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한국의 산업 디자이너다. 영국의 세계적 디자인 회사인 탠저린 공동대표를 지낸 그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가장 불편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 디자인으로 개선해주면서도 기업이 이윤을 낼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돈태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 글로벌디자인팀장(전무)은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한국의 산업 디자이너다. 영국의 세계적 디자인 회사인 탠저린 
공동대표를 지낸 그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가장 불편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 디자인으로 개선해주면서도 기업이 이윤을 낼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 이태경 기자
이돈태 전무는 앞으로 샌프란시스코, 런던, 도쿄, 상하이, 델리 등에 있는 삼성전자의 해외 디자인연구소를 총괄하고, 
글로벌 경험을 바탕으로 삼성전자 제품 전반에 대한 디자인 혁신을 담당하게 된다. 삼성전자는 2001년 CEO 직속의 
디자인경영센터를 만들고, 2005년 600여명이던 디자이너를 2012년 이후 1000여명으로 늘리는 등 디자인을 기업의 
브랜드와 이미지를 혁신하는 핵심 요소로 삼는 디자인 경영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TV·휴대전화·노트북·카메라·가전제품 등의 디자인 역량을 강화하고, 세계 각 지역 소비자들의 감성을 반영한 
디자인 개발을 지원하는 역할도 맡았다"고 했다.

이 전무는 비행기·중장비 같은 중후장대 산업부터 냄비·걸레·의자 등 소비재까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디자인을 해왔다. 
해피콜의 가정용 청소용품 캐치맙 걸레와 진공 냄비 시리즈, 웨지우드 자기 제품, 현대중공업의 미래형 중장비 기기 콘셉트 
디자인, KAI(한국항공우주산업)의 4인용 민간 항공기 조종석 등의 디자인에도 참여했다.

디자인의 시대이다. 소비자들은 '멋있다' '예쁘다'는 느낌이 들면 필요하지 않은 물건도 산다. 
이 전무가 어떻게 디자인을 통해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여왔는지 그 비결에 대해 들었다.

'유럽 빅 5' 산업디자인회사 공동대표 올라

이 전무가 세계 디자인 업계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2000년 영국항공의 비즈니스클래스 좌석 디자인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이 디자인은 비행기 인테리어의 고정관념을 깨고 좌석 2개를 한 쌍으로 서로 마주 보게 배치해 승객들이 일자로 누울 수 있게 
했다. 이 혁신적인 S자형 좌석 배치는 항공업계에 기내 디자인 경쟁을 촉발시켰다.

국내에서는 래미안 아파트의 '한국형 욕실' 디자인이 유명하다. 
한국 아파트의 욕실은 서양식 구조를 그대로 적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에 살짝 변화를 줬다. 
샤워공간에서 발을 씻을 수 있게 하고 욕조에선 손빨래를 할 수 있게 했다. 
한국인의 생활습관에 맞으니 반응이 좋았다.

그가 공동대표로 있었던 탠저린은 유럽 디자인 컨설팅 회사 중 '빅 5' 중 하나로 꼽힌다. 
누드형 컴퓨터 '아이맥'과 MP3플레이어 '아이팟'의 외장 디자인을 만들어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 신화를 만든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도 이 회사 출신이다.

"탠저린에서 인턴사원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디자이너로 인정받기까지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초등학교 교사이며 화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화가의 꿈을 키웠지만 집안의 반대에 부딪혔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디자인이란 미지의 세계에 사로잡혔다. 디자이너는 내 인생의 차별화 전략이었다."
2000년 탠저린이 디자인한 영국항공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 사람은 하체보다 상체가 더 큰 것에 착안해 2개의 의자를 한 쌍으로 마주 보게 배치하고 앞뒤 공간을 넓혀 누울 수 있게 했다.
2000년 탠저린이 디자인한 영국항공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 사람은 하체보다 
상체가 더 큰 것에 착안해 2개의 의자를 한 쌍으로 마주 보게 배치하고 
앞뒤 공간을 넓혀 누울 수 있게 했다. / 탠저린 제공
이 전무는 초등학교 때까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에서 자랐다. 
폭설이 내리면 1주일 이상 외부와 고립되기 일쑤인 강원도 강릉 오지였다. 
에스컬레이터를 처음 본 게 대학 입시에 실패해 재수하려고 서울에 왔을 때였다. 
북한말 같은 강원도 사투리가 심해 서울에선 물건 하나 제대로 못 샀다. 
하지만 강원도 촌놈 기질이 그에겐 경쟁력이었다.

그는 "한번 믿음이 쌓이면 계속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게 강원도식 사고인데, 
이런 촌놈 정서가 유럽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준 것이 영국에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했다.

그는 홍익대 산업디자인과에 삼수 끝에 가까스로 입학했다. 
1997년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왕립예술학교(RCA·Royal College of Art) 제품디자인과에 입학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아시아 외환위기가 터졌다. 학비도 생활비도 비싼 영국에서 버티기가 힘들어지자 유학생들은 짐을 싸 하나 둘 귀국길에 
올랐다. 그는 탠저린에 인턴사원으로 들어가 주급 170파운드(당시 32만원)를 받으며 일했다. 아내도 면세점에서 일을 했다.

―디자인 전공 유학생이 탠저린에서 일하게 된 것만으로도 좋았을 것 같다. 처음에 어떤 일을 했나.

"사람들이 꺼리는 모델링 같은 허드렛일을 도맡았다. 
모델링 작업은 디자인한 것을 실제로 대량 생산할 때 어떤 모양이 되는지 시뮬레이션해보는 작업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하기도 하지만 스티로폼 같은 재료로 직접 형상을 만든다. 
스티로폼 먼지가 풀풀 날리도록 비행기 의자를 깎았다. 
힘도 들고 건강에도 안 좋은 작업이라 모두 하기 싫어했다."

―당시 탠저린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서른 넘어 유학 갔으니 영어가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한번은 미국의 한 업체 사장이 걸어온 전화를 받았는데, 그는 말끝에 내게 청소부냐고 묻더라. 
영어에 주눅들지 않고 당당해지기 위해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나는 한국인이니까 영어를 영국 사람처럼 할 필요가 없다. 
나는 디자이너니까 아리랑TV 아나운서처럼 영어를 할 필요가 없다'고. 
대신 '사람들이 나에게 듣고 싶은 것은 유창한 영어가 아니라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영국 디자인 회사에 인턴사원으로 들어가 7년 만에 대표가 됐다. 비결이 뭔가.

"열심히 일하는 것 외에 내가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할 방법이 없었다. 한국에서 하던 식으로 밤늦게까지 일했다. 
영국 사람들은 일 년에 두 달 정도 휴가를 갔는데, 나는 몇년간 휴가를 거의 가지 않았다. 
영어는 못했지만 '버티기'는 잘했다."

1998년 탠저린에 인턴으로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정식 직원이 됐다. 
2003년엔 아시아지역총괄담당 부사장이 됐고, 2005년엔 공동 대표로 취임했다. 당시 37세였다. 
영국의 디자인 업계도 경쟁이 치열하다. 
2001년 기준 영국 10대 디자인 회사 중 지금 살아남은 회사가 3개에 불과할 정도다.

탠저린이 유럽에서 손꼽히는 디자인회사로 성장하기까지 그의 공이 컸다. 특히 10여년 전 그의 주도로 서울에 아시아 총괄 지사를 설치한 것은 탠저린이 성장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는 "탠저린이 영국의 산업디자인업계에선 최초로 제조업이 강하고 성장 잠재력이 많은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서울에 진출했다. 당시 탠저린의 아시아 비중은 5%도 안 되었지만, 최근 7~8배로 껑충 뛰었다"고 말했다.

그가 참여한 프로젝트의 첫 히트 작품은 2000년에 시작한 영국항공 비즈니스클래스 좌석 디자인이었다. 
호텔 라운지처럼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하늘 위의 라운지'라는 콘셉트를 잡았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하체보다 상체가 더 크다는 점에 착안해 위아래 폭이 다른 의자를 앞뒤로 배치하고, 
공간을 넓혀 승객들이 편히 누울 수 있도록 했다. 더 편안한 좌석을 만들되 기내 좌석 수를 줄일 수는 없다는, 
영국항공 측의 상충되는 요구를 한 방에 해결한 발상이었다. 
비즈니스 클래스라고 해도 180도 평면으로 누울 수 있는 비행기가 없었기 때문에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비행기나 버스 의자는 모두 앞을 보고 있어야 한다는 상식을 깬 역(逆)발상이다.

"승객들이 마주 보고 앉을 때 비행 방향과 반대쪽을 보고 앉는 승객이 불편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모르는 사람과 마주 봐야 하니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 문제 제기도 있었다."

―영국항공 측을 어떻게 납득시켰나.

"비행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앉는 것에 대한 우려는 영국의 전통 마차를 예로 들어 설득했다. 
유럽의 마차는 서로 마주 앉아 타는 방식이라 비행기에서도 이 방식은 어색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르는 사람과 마주 보는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좌석 사이에 반투명 칸막이를 마련했다."

이 프로젝트는 '대박'을 터뜨렸다. 
그는 "영국항공은 비즈니스석 디자인 개선으로 승객이 늘어 몇년 동안 영업이익이 해마다 7000억원 넘게 증가해 경영이 
크게 개선됐다"고 했다. 정경원 KAIST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이런 좌석 배치가 특히 장거리 승객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지자 영국항공은 같은 디자인을 일등석에도 적용했다"며 
"다른 항공사들도 승객 편의를 위한 의자 및 기내 환경개선 디자인 경쟁을 벌이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이 디자인은 그에게 영국 최고 권위의 디자인상인 IDEA 그랑프리를 안겨줬다. 
탠저린은 항공 관련 프로젝트를 잇달아 수주했다. 
지난해 취항한 아시아나항공의 A380 기내 디자인도 그의 손을 거쳤다.
이돈태 삼성전자 전무가 탠저린에서 근무하던 시절 디자인에 참여한 해피콜의 냄비와 웨지우드 자기 제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돈태 삼성전자 전무가 탠저린에서 근무하던 시절 디자인에 참여한 해피콜의 
냄비와 웨지우드 자기 제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 비행기 좌석부터 
냄비·걸레까지 가리지 않고 디자인한다. / 조선일보DB
"최후의 10% 디테일이 승패를 결정"

이 전무가 한국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래미안의 '한국형 욕실'이다. 
2006년 삼성물산 주택사업부의 디자인 고문을 맡아 서울 반포 래미안 퍼스티지 등에 참여하면서 
'그 나물에 그 밥'인 아파트에 디자인 개념을 불어넣었다. 
이 디자인은 2008년 대한민국 굿디자인상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아파트에 획일적인 욕실 구조를 한국 생활습관에 맞게 바꿨다던데.

"우리는 발을 자주 씻고, 걸레를 빨아 집안 청소를 한다. 기존 아파트에는 이에 대한 배려가 적었다. 
그래서 샤워 공간에서 발을 씻을 수 있는 발 받침을 만들고, 
욕조에서 손세탁을 하거나 애완동물을 목욕시킬 수 있는 별도 공간을 마련했다."

―한국의 아파트는 획일적인 구조로 개성이 없다는 평이 많았다.

"건설사들이 수십년 동안 지은 아파트는 거실이나 주방을 넓히거나 방의 개수를 늘리고 줄이는 정도로만 변화를 주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한 곳이 넓어지면 다른 곳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한계적 상황에서 디테일이 힘을 발휘한다. 
주거 활동을 면밀히 관찰해 불편함을 찾아낸 후 이를 배려하는 디자인을 하면 삶의 경험이 바뀐다."

―한국의 디자인은 전반적으로 우수하지만 디테일이 아쉽다는 지적이 있다.

"작은 디테일이 큰 차이를 만든다. 
유럽의 디자인이 강하다는 것은 우리도 비슷하게 할 수 있는 90% 때문이 아니라 나머지 10% 때문이다. 
한국의 디자인이 90% 단계에서 끝난다면 유럽 디자인은 거기에서부터 두세 단계 더 몰두한다. 
그 과정에서 디테일이 완성된다. 90% 제품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승패는 나머지 10%에서 갈린다. 90%를 넘어서는 건 90%까지 이루기 위한 과정보다 더 힘들 수 있다. 
디테일은 몰입(沒入)을 통해 완성된다. 
'명품'은 작은 디테일에서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걸레도 디자인했던데.

"비행기가 됐든 걸레가 됐든 내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근사한 것을 디자인했느냐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용자에게 최고의 만족과 경험을 줄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해피콜의 캐치맙 걸레는 디자인에 변화를 주자 매출이 껑충 뛰었다. 
브랜드를 만들고 디테일에 변화를 주어 걸레를 걸레처럼 안 보이게 했다. 
전형적인 걸레 색인 청색을 보라색 계열로 바꾸고 라벨을 교체하는 등 고급스럽게 마감 처리했더니 홈쇼핑에서 
6개월 동안 500억원 매출을 올린 히트 상품이 되었다."

―어떻게 소비자의 마음을 읽나.

"굴삭기 디자인을 맡으면 중장비 운전을 배우기도 한다. 
의자·전화기 같은 생활용품 디자인은 사용자들이 '답'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척추전문병원인 우리들병원과 함께 개발한 우리들체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자에 앉을 때 등받이에 기대기보다 허리를 
구부려 책상이나 테이블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착안했다. 
등받이를 없애는 대신 의자 앞쪽에 가슴 지지대를 부착해 척추질환을 예방하도록 디자인했다."

―어린 시절 그림을 잘 그린 게 디자인 작업에 도움이 됐을 것 같다.

"디자인은 그 자리에서 즉석에서 그려주는 길거리 초상화가 아니다. 그림이 아니라 생각이 중요하다. 
디자인을 그림 그리기 작업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탠저린 입사 초기에는 고등학교 때부터 줄기차게 연습한 드로잉 실력이 장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프로젝트를 맡으면 무조건 그리기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영국 디자이너들에겐 소비자들의 욕구(needs)를 분석하고 정의 내리는 게 우선이었다. 
어떤 발상을 하고, 어떻게 그 생각을 전개시키는가가 중요하지 드로잉은 도구에 불과하다. 
디자이너는 예술가가 되면 곤란하다. 너무 앞서 나가면 안 된다. 
좋은 디자인은 소비자보다 반(半)발자국만 앞서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디자인이 소비자들과 발맞추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디자인은 디자이너를 위한 자아실현의 도구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너무 앞선 디자인은 자기만족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시장에서는 실패한다. 시장은 움직이는 타깃이다. 
좋은 디자인은 움직이는 과녁을 정확히 맞히는 디자인이지, 활 시위를 당기는 힘을 자랑하는 게 아니다."

"좋은 디자인은 시장의 움직이는 과녁을 맞히는 것"

―디자이너는 소비자의 요구도 알아야 하지만 경영자도 설득해야 한다.

"디자인에서 가장 나쁜 것이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다. '커피이론'이란 게 있다. 

디자이너는 뜨거운 커피가 시장에 먹힌다고 생각해 뜨거운 커피를 개발했다. 

하지만 일부 다른 사람은 차가운 커피를 사람들이 더 좋아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양쪽 고객을 다 만족시키기 위해 미지근한 커피를 만들었는데, 실제 시장에서는 모두에게 외면받았다. 

많은 사람이 참견해 이도 저도 아닌 디자인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제품 생산 과정에서 당초 디자인이 변형되지 않도록 디자이너에게 실질적 권한을 주어야 한다."

Who is 이돈태―경영은 수치를 요구하고, 디자인은 비전을 제시한다. 

접점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경영자들은 디자인을 아이스크림에 꽂혀 있는 막대 초콜릿처럼 있어도 되고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디자인은 제품의 겉모양을 꾸미는 데 그치지 않는다. 디자이너는 소비자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욕구를 읽어내고 시장의 흐름을 상품에 반영한다. 

경영자는 디자이너의 전문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게 기업의 수익으로 연결된다."


―구상을 하다 벽에 부딪히면 어떻게 하나.

"홍익대 인근이나 재래시장같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거나 오래 묵어 

정겨운 삶의 현장에 들어가 푹 파묻힌다. 

우리가 늘 접하는 사람들의 행태나 문화를 들여다보면 전에 없던 생각이 

떠오르곤 한다."

―디자인은 과학인가, 예술인가.

"소비자의 욕구와 시장을 예측하기 위해 빅데이터 등을 동원하는 측면에선 

과학이기도 하고, 소비자들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열망을 디자이너의 

'촉(느낌)'으로 상상하는 예술이기도 하다. 

시장은 달리는 목표물처럼 많은 변수를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데이터에 근거한 예측보다 미래를 자유롭게 그려 보는 

상상력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기업은 예측하지 못해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지 못해 망한다'는 말도 있다."

―당신에게 디자인은 무엇인가.

"매번 새로운 산을 오르는 일이다. 디자인은 항상 제로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