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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 우리는 왜 새로운 스타에 열광하는가?

바람아님 2016. 12. 23. 23:40
[중앙일보] 입력 2016.12.23 00:18

누군가를 영웅시하는 건 자신의 바람을 대상에 투사하기 때문
정치인 스스로 만든 이미지 넘어 있는 그대로 보려는 노력 필요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장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장


연예계이건 스포츠계이건 정치계이건 우리는 항상 새롭게 떠오르는 스타에게 열광한다. 그들은 기존의 형식에서는 볼 수 없었던 참신하고 긍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우리도 모르게 그들에게 끌린다. 특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운동선수, 해외에서 큰 상이나 인기를 얻은 작가나 가수, 배우, 감독 등은 온 국민이 자랑스러워하는 영웅이 되기도 한다. 정치계도 예외가 아니어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나 몇 해 전 우리나라 안철수 의원과 같이 기존 정치인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 정치에 입문했을 때 그의 행보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고 그만큼 큰 기대를 한다. 기존의 낡은 관습을 깨고 새로운 정치를 보여 줄 거라는 기대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융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우리 내면의 무의식을 공부하다 보니 이러한 새로운 스타에게 열광하거나 누군가를 영웅시하는 것은, 보는 사람들의 자기 투사(projection)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즉 열광하는 스타나 영웅의 좋은 면들은 알고 보면 바라보는 사람 마음 안에 있는 긍정적인 모습을 영웅이라는 대상에게 투사해 마치 그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 영웅이 아주 착하고 선하게 보인다거나 정의롭고 바르게 보인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습이라기보다는 보는 이가 본인 내면에 이미 가지고 있는 선하고 정의로운 모습을 그 사람을 통해 잠시 본 것이라는 말이다.

사실 이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이 우리는 그 스타나 영웅에 대해 솔직히 잘 모른다. 매체를 통해 단편적인 사진 이미지나 짧은 신문 기사를 접해 봤을 뿐 그 사람을 직접 만나 본 적도, 깊은 이야기를 나눠 본 적도 없다. 하지만 누군가를 이해하고 안다는 것은 그 사람 심리 저변에 깔려 있는 다양한 과거 경험과 상처, 콤플렉스, 욕망, 성격 등을 알아야 하는 게 아닌가.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해 저 사람은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내 안에 있는 심리적 재료들을 가지고 예상하고 판단한 것이다. 어쩌면 그 상대하고는 크게 상관없는 투사였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투사를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예가 바로 사랑에 빠졌을 때라고 한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사람들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사랑에 빠지면 내가 상대에게 투사한 그 대상의 좋은 면만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는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심리적 결핍까지도 상대가 다 채워 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래서 사랑에 빠지면 눈에 콩깍지가 씐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결혼 후 삼사 년이 지나고 나서 보이는 남편이나 아내의 모습은 내가 막 사랑에 빠졌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나의 투사가 멈췄을 때 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위대한 스타나 영웅으로 오랫동안 남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긴 하지만 그에 대해 대중이 자세히 몰라야만 가능해진다. 잘 몰랐을 때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을 그 대상에게 마음대로 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새롭게 떠오르는, 그래서 우리가 아직 잘 모르는 그런 영웅에게 더 크게 열광하게 된다. 최근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한 ‘더 크라운(The Crown)’이라는 드라마를 보게 됐다. 이 드라마에서도 이 점을 이야기한다. 왕의 자리에 막 오른 어린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여든이 넘은 윈스턴 처칠 총리가 조언을 한다. 왕의 자리를 잘 보존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개인적인 모습을 대중에게 드러내지 말라고 말이다. 왕이 쓰는 왕관이 순수한 권위의 상징으로 남기 위해서는 여왕의 사사로운 모습이 그 상징과 오버랩되지 않아야 오랫동안 품위를 유지하고 존경받을 수 있다고 말이다. 오랜 왕실 역사의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라고 덧붙이며 말이다.

지난 선거 때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 가운데 그럴 줄은 정녕 몰랐다는 반응을 하시는 분이 많다. 기존에 알았던 대통령의 이미지와 실제 대통령의 모습은 너무도 달랐다고 많은 분이 크게 실망했다. 특히 최태민 목사와 그의 딸 최순실과의 사적 관계에 대해 전혀 몰랐기에, 그리고 남들과 소통하지 않고 비밀스러운 모습을 유지하려 했기에 박 대통령을 향한 사람들의 투사가 가능했던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인을 바라볼 때 진정 그 사람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투사하고 있는 내 바람이 담긴 이미지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정치인 스스로가 만들어 낸 자신들의 이미지를 넘어서,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그 노력이 모두에게 간절히 요구된다.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