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氣칼럼니스트/송호근의 세사필담

[송호근의 세사필담] 20세기에 이런 나라가 없었다

바람아님 2024. 8. 6. 02:18

중앙일보  2024. 8. 6. 00:39

연해주와 간도에 묻힌 독립투쟁
독재와 항쟁 속 이룩한 자립투쟁
누구도 흉내 못 낼 한국의 역투
권력투쟁 정치가 망칠까 두려워

필자는 최근 연해주 한인들 얘기에 푹 빠져 지냈다. 1860년대부터 두만강을 건넌 조선인들은 연추 지역을 거쳐 연해주 전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3·1운동이 일어난 시점에 연해주엔 10만 이주민이 살았다. 간도 이주민을 합하면 30만 명에 달했다. 이들은 척박한 땅을 개간하고 가축을 치면서 총을 들었다. 궁핍했던 이들은 자식들을 독립의용대에 선뜻 내줬다. 독립군은 간도에 4000명, 연해주에 5000명을 헤아렸다.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독립부대는 여순 반도와 연해주 해안을 점령한 일본군 5개 사단과 대적했다. 나라를 잃은 지 10년, 1920년대 초반 외지(外地) 독립투쟁사다.

연해주 의병대는 아쉽게도 볼셰비키 정권에 의해 무장해제 됐고, 간도 독립지대들은 일본이 만주국을 구축하자 분산 투쟁을 고수하거나 상해임시정부를 따라 중국 내륙으로 이동했다. 독립군이 대륙으로 전개하는 동안 연해주 한인들은 2차 대전 직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됐음을 두루 아는 바다. 카자흐스탄 불모지에 17만 한인들이 버려졌다. 눈물의 역사가 따로 없다.

눈물은 결행(決行)의 사립문, 2차 대전 종전까지 세계 독립투쟁사에서 한국이 유독 두드러진 이유다.....제국을 상대로 한 한국의 독립투쟁은 연해주, 간도, 중국 내륙, 그리고 미주(美洲)로 끈끈히 이어져 결국 나라를 되찾았다. 미국이 투하한 원폭의 산물이라는 속설을 과도하게 강조하면 독립투쟁의 한국적 특성이 묻힌다.

광복 79주년, 어느덧 1945년생 해방둥이가 증손을 볼 만큼 세월이 흘렀다. 세 세대가 거쳐온 여정이 만만치는 않지만, 적어도 증손 세대가 글로벌 시선과 감각을 갖출 기반은 닦았다. 세계은행은 한국을 중진국 함정을 벗어난 ‘성장의 슈퍼스타’로 호명했다. 특히 한국의 ‘3i 전략’, 투자(investment), 기술 도입(infusion), 혁신(innovation)에 주목했다. 해외차관을 들여와 중화학공업을 제대로 일으킨 나라가 한국이다. 강제저축을 기억하는가, 월급에서 10%를 떼 내 우체국 통장에 의무적립했다....결국 선진한국을 향한 자립투쟁이었다.

광복 79년 세월은 헛되지 않았다. 한국 문화가 세계인을 매료시키고, 청년 세대가 감격의 승전보를 연달아 보내고 있다. 총, 활, 칼, 쏘고 찌르는 독립투쟁의 끈질긴 유전자가 21세기형 경쟁 인자로 진화해 세계를 매혹한다. 그런데 저토록 죽 쑤는 정치, 총, 활, 칼을 당쟁(黨爭)에 동원하는 비루한 정치라니. 20세기 공든 탑을 지키는 것은 정치권의 몫인데 없는 것만 못한 국회, 21세기에 이런 나라도 없다.


https://v.daum.net/v/20240806003936852
[송호근의 세사필담] 20세기에 이런 나라가 없었다

 

[송호근의 세사필담] 20세기에 이런 나라가 없었다

필자는 최근 연해주 한인들 얘기에 푹 빠져 지냈다. 1860년대부터 두만강을 건넌 조선인들은 연추 지역을 거쳐 연해주 전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3·1운동이 일어난 시점에 연해주엔 10만 이주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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