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5-4-30
어두운 전시장 한 구석에 타자기가 두 대 놓여 있다. ‘두 문장’이라는 제목의 설치 작품이다. 자판을 떼어버린 타자기에는 흰 램프 하나가 반짝인다. 관객은 무슨 문장을 치는지도 모른 채 불빛을 따라 글자를 쳐 나가게 된다. 불빛이 이끄는 대로 다 치고 나면 타자기에서 환한 조명이 나와 방을 밝힌다.
작은 타자기에 설정된 문장은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큰 것에는 ‘하느님은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십니다’이다. “신과 사랑의 존재를 잊고 사는 현대인의 황폐한 내면을 밝히고자 하는 설치”라는 작가의 설명과 시연은 새삼스럽다. 그 종교성에 거부감이 든다면, ‘하느님’ 대신 다른 것들을 넣어도 무방할 것이다.
이 설치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빛과 어둠의 명징한 대비, 숨겨진 문장의 순진함 때문이 아니다. 자판을 제거한 타자기를 칠 때 손끝이 얼마나 아플까 싶은 느낌이 들 정도로, 타자 치는 둔탁한 소리에서 그 쓰라림이 그대로 전해져와서다. 사랑은 아프다. 인도네시아 미술가 크리스틴 아이 추(42)의 국내 첫 개인전 ‘완벽한 불완전성’이 6월 20일까지 서울 압구정로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다.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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