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7.12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박사 학위를 받고 전임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하버드대에서 보낸 10년 동안 혼자 조용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때면 나는 종종 월든 연못(Walden Pond)을 찾았다.
미국의 자연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1845년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부터 2년간 통나무집을
짓고 살았던 바로 그곳이다. 넉넉잡아 반 시간쯤 걸리는 연못가 산책로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3분의 1가량 걷다 보면 소로가 살던 통나무집 터가 나온다. 집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버렸고,
지금은 빈 공간에 작은 푯말만 하나 동그마니 서 있다.
소로는 199년 전 오늘 월든 연못에서 그리 멀지 않은 콩코드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소로는 199년 전 오늘 월든 연못에서 그리 멀지 않은 콩코드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같은 동네로 이사 온 초월주의 문필가 월도 에머슨의 영향으로 자연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특히 에머슨이 1836년에 저술한 에세이 '자연(Nature)'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싶다"며 자연으로 돌아가 겪은 '소박한 삶'의 경험을 적은 '월든'은 자연주의 사상의 고전이 되었다.
훗날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펼치며 인도의 민족 해방을 이끈 마하트마 간디가 늘 곁에 두고 읽었다는 그의 또 다른 저서
'시민 불복종'은 지금도 환경 운동을 비롯한 모든 시민운동의 바이블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소로는 국립생태원이 하고 있는 연구인 생태학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소로는 국립생태원이 하고 있는 연구인 생태학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생태학이라는 학문의 명칭을 처음으로 소개한 학자는 흔히 독일 진화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로 알려져 있다.
그는 1866년 생태학(Ökologie)이라는 학문을 제창하며 '생명체와 환경의 관계를 연구하는 종합적인 과학'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내가 자주 교재로 사용한 피터 스틸링의 '생태학 입문(Introductory Ecology, 1996)'에 따르면 헤켈에 앞서
소로가 1858년 지인에게 보낸 서한에서 'ecology'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내년이면 소로 탄생 200주년이다. 생태학과 환경 운동의 새 전기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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