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77] 꿀벌의 여름 나기
(출처-조선일보 2016.07.26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연일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전기 요금이 걱정돼 그렇지 우리는 정 급하면 에어컨을 켜고 실내 온도를 낮출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동물들은 어떻게 이 더운 여름을 견뎌내고 있을까?
워낙에 한데에서 먹고 자는 동물들은 각자 알아서 버틸 테지만 우리처럼 여럿이 모여 집을 짓고 사는
벌·개미·흰개미 등 이른바 사회성 곤충은 나름대로 사회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꿀벌의 민주주의'라는 책으로 우리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미국 코넬대 토머스 실리(Thomas Seeley)
교수에 따르면 꿀벌은 대충 세 단계의 전략을 마련해 두었단다.
둥지의 실내 온도가 상승해 급기야 알과 애벌레를 보호하고 있는 중앙부까지 위험해지면 일벌들이 일제히 날갯짓을
시작한다.이때 둥지 입구에 손을 대보면 둥지 내부로부터 밀려나오는 제법 센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이를테면 선풍기를 가동하는 전략이다.
하지만 그걸로도 모자라면 수백 마리의 일벌이 아예 둥지 밖으로 나와 체온에 의한 온도 상승을 줄이고
통풍로도 더 넓게 확보한다.
최근 그의 연구진이 발견한 세 번째 전략은 바로 물로 냉각하는 방법이다. 꿀벌 사회에도 현역에서 은퇴한 노년층이 있다.
대개 전체의 1% 정도 되는 이 고령 일벌들이 물 수송 작전에 동원된다.
꿀벌 사회는 식물에서 채취해오는 꽃꿀 덕택에 평소에는 물을 따로 길어올 필요가 없지만, 고온 현상이 심해지면 내부에서
일하는 일벌들이 입구 쪽으로 나와 혀를 내밀고 물이 필요함을 알린다. 한참을 그렇게 애걸하면 말년에 편히 쉬려던
퇴임 일벌들이 마지못해 물을 길러 나선다.
특별히 심각한 물 부족 사태를 겪은 꿀벌 사회는 물을 비축하기도 한다.
다만 물을 담아둘 통이 없어 물을 잔뜩 들이켠 배불뚝이 일벌들이 살아 있는 물통이 되어 둥지 내부에 매달린다.
실리 교수는 이런 광경을 보고 "마치 냉장고 안에 맥주병을 잔뜩 쟁여 둔 것 같다"고 말한다.
우리 인간이 꿀벌을 연구한 게 어언 수백 년이 됐건만 꿀벌의 세계는 여전히 새롭다.
'其他 > 최재천의자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79] 전설의 과학 (0) | 2016.08.09 |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78] 눈엣가시, 입엣가시 (0) | 2016.08.02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76] 두 발의 은퇴 (0) | 2016.07.20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75] 헨리 데이비드 소로 (0) | 2016.07.12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74] 화개장터와 동백대교 (0) | 2016.0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