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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철 좀 들자!

바람아님 2016. 7. 14. 09:54

(출처-조선일보 2016.07.14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처스 대표)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처스 대표영화를 만들다 보면 다양한 직능의 사람들과 협업을 하게 된다. 
촬영팀·조명팀·미술팀·분장팀·음악팀·시각효과팀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과 일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영화를 종합예술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오랜 기간 영화를 만들다 보니 수년 전에 함께 일했던 스태프와 다시 만나기도 한다. 
오래전 막내였던 스태프가 한 파트의 책임자가 된 것을 보면 대견함과 동시에 친근함이 절로 우러나온다.
그러다 보니 호칭 때문에 난감할 때가 있다. 
입에 익은 대로 한 직종의 책임자를 "철수야" "영희야" 혹은 "야" "너"라고 부르면, 
분위기가 얼어붙기 때문이다.

촬영이 끝나고 소주잔을 기울이는 술자리면 철수든 영희든 상관없다. 
하지만 이미 그 직종의 책임자가 됐고, 자신을 믿고 따르는 팀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철수야" "영희야"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혹시 "아직도 넌 나한테는 아랫사람인 거야. 
네가 지금 팀장이지만 우린 이미 10년 전에 위계가 정해진 거야"라는 의식이 발현된 건 아닌지 고민해봤다. 
그래서 고심 끝에 바꾸기로 했다. "철수야" "영희야" 대신 "김 감독" "김 기사"라고 말이다. 
지금의 그를 인정하고, 그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부르도록 마음을 먹었다.
[일사일언] 철 좀 들자!
얼마 전 한 대기업이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상호 간 호칭을 '○○님'으로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미 한 영화배급투자사가 그렇게 시행하는 걸 봤기에 반가운 소식이었다. 
소위 예술을 한다는 영화계 사람들은 "평생 철 안 들 거야. 철들면 창작을 못 해"라는 말을 무슨 신념(?)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철'은 연령, 직위 고하를 넘어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가운데 
창의성이 최대한 발휘된다는 의미이지, 상대를 하대하고 권위를 강요하고 위계를 따지는 그런 건 아닐 거라고 믿는다.

나이를 먹으면 철 좀 들어야지, 언제까지 막 살 거냐고 스스로를 다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