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3.07.16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2013년 1월 13일 하와이 바다에서 쥐가오리의 군무를 구경하던 잠수부들에게 돌고래 한 마리가 다가와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가끔 자기 몸을 바위에 비비곤 자꾸 가까이 다가오는 돌고래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잠수부 한 사람이 유심히 살펴보니 그 돌고래의 몸에는 낚싯바늘이 박혀 있었고 지느러미는 온통
낚싯줄로 뒤엉켜 있었다. 돌고래는 자칫 흉기로 보일 수 있는 펜치까지 꺼내든 잠수부가 낚싯줄을
제거하기 쉽도록 지느러미 부위를 잠수부 쪽으로 들이대며 침착하게 행동했다.
8분 남짓의 이 동영상은 지난 6개월 동안 유튜브에서 거의 300만 회에 가까운 조회 수를 기록했다.
한 달쯤 전 러시아에서는 병에 머리가 낀 어린 붉은여우 한 마리가 길에 앉아 있다가 군인들이 나타나자
제 발로 걸어와 도움을 청하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랐다. 한 군인이 손으로 여우의 목을 쥐고 조심스레
병에서 꺼내주자 여우는 쏜살같이 숲으로 사라졌다. 평소 같으면 사람을 피할 여우지만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위기에 봉착하자 용기를 내어 도움을 청한 것이다. 이 동영상도 현재 조회 수 250만 회를 육박하고 있다.
각각 한 번씩밖에 관찰되지 않은 일이지만 이 돌고래와 여우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인간에게 도움을 청한 게 분명해 보인다.
도대체 이들은 인간이 자기들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인간에게 어떻게 그런 능력과 배려의 마음이 있다고
확신한 것일까? 사실 다른 동물들은 세대를 거듭하며 수십만 년 동안 우리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똑똑히 보아왔다. 어쩌면
우리 인간만 그걸 모르고 여전히 치졸한 행동을 거듭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 야생 적응 훈련을 받던 남방큰돌고래 삼팔이가 찢어진 그물을 빠져나가 그리던 친구들과 합류했다.
이제 곧 제돌이와 춘삼이도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녀석들은 과연 우리가 자기들을 야생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이렇게
진심으로 노력한 걸 알고 있을까? 워낙 의사소통 능력이 뛰어난 동물이니 삼팔이가 이미 동네방네 얘기했을지 모르지만
제돌이와 춘삼이까지 돌아가면 참 할 얘기가 많을 것 같다. 갇혀 살던 아픈 기억일랑 다 잊고 뒤늦게나마 자유를 찾아주기
위해 애쓴 우리의 진심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참고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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