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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24] 뜨거운 여름의 욕망

바람아님 2013. 7. 30. 15:25

(출처-조선일보 2013.07.30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뜨거운 여름만 되면 거의 저절로 떠오르는 연극이 있다. 우선 제목부터 기가 막힌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유리 동물원'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더불어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대표작. 유산을 물려받기 위해 불행한 부부 관계를 유지하려 안간힘을 다하는 여주인공을 보며 태양이 작열하는 양철 지붕 위에서 뜨거워 어쩔 줄 몰라 연신 발을 들어 털어대는 고양이가 저절로 떠오르는 연극. 인간의 욕망보다 더 뜨거운 건 없으리라.

비록 흑백영화이긴 하지만 여름의 뜨거움을 은근하고 지난하게 전해주는 영화로는 1964년 데시가하라 히로시 감독의 '모래의 여자'가 압권이다. 아베 고보의 원작을 영화로 각색하여 칸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작품. 쉬지 않고 모래를 퍼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그래서 욕망을 품는 일 자체가 그야말로 과욕인 상황에서도 묵묵히 삶을 이어가는 여인에게서 묘한 정욕을 느끼는 남주인공. 도대체 인간의 욕망은 어디가 끝이란 말인가?

뜨거운 여름의 연상은 나를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에서 '모래의 여자'를 거쳐 애리조나 사막으로 이어준다. '모래의 여자'를 소설로 읽었거나 영화로 본 사람들은 남주인공을 그저 평범한 곤충학자로만 기억하겠지만, 그는 사실 인적이 드문 해안사구로 길앞잡이라는 곤충을 채집하러 갔다가 헤어날 수 없는 모래 수렁에 갇힌 것이었다. 1981년 여름 나 역시 길앞잡이를 연구하기 위해 애리조나의 치리카와 사막을 찾았다.

길앞잡이는 애벌레와 성충 시절 모두 다른 곤충을 잡아 먹고 사는 대표적인 포식곤충이다. 사람이 다가가면 아주 멀리도 아니고 거듭 쫓아가기 딱 알맞을 만큼만 푸르르 날아간다. 사방을 구별하기 힘든 애리조나 사막에서 나는 길앞잡이의 유혹에 이끌려 점점 더 사막 한가운데로 들어가다 길을 잃은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모래의 여자'의 남주인공도 아마 길앞잡이의 감질나는 이끌림에 해가 지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집채처럼 불쑥 다가서는 거대한 욕망은 차라리 거부할 수 있다. 사정거리 안에 있는 작은 욕망들의 이어짐이 더 끊기 어렵다. 금방 놓친 길앞잡이가 저만치 날아가 살포시 등을 지고 내려앉는다. 접을 때를 알아야 욕망을 다스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