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 ‘다이어트 경영’만으로는 변화의 시대를 버틸 수 없다.”
다마키 다다시(玉置直司·사진) 전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서울지국장은 “기술·인재·브랜드·자본력을 모두 갖춘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문제 되는 부분은 경영뿐”이라고 말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저성장·고령화 사회에 접어드는 가운데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적인 퇴직이 다가오고 있다. 최근 이같은 상황을 다룬『한국 경제, 돈의 배반이 시작된다』를 펴낸 그를 20일 만났다.
[중앙일보]
입력 2016.12.25 11:41
다마키 전 지국장은 1987년 연세대 외국어학당에 다닐 때 대통령 직선제 요구 시위를 경험했다. 최근에는 촛불시위를 취재하기 위해 방한한 일본 언론인들을 이끌고 광화문에 나가느라 토요일마다 바쁘다고 한다. 이번에 책을 내면서 91년 5400만 엔에 샀던 도쿄의 아파트를 7년 후 2100만 엔에 팔았던 경험을 담았다. 부제가 ‘잃어버린 20년이 던지는 경고’다.
다마키 전 지국장은 얼마 전 강남의 일본 식당에 초대받아 갔다고 한다. 코스 요리가 15만원부터 시작하는 비싼 곳이었는데도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초대한 사람은 “좋아하는 것으로 고르라”고 권했다. 일본에서 국회의원과 식사를 한 경험도 들려줬다. 의원 비서가 1인당 3672엔(약 3만7000원)이라고 알려줬고 참가자들은 더치페이를 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차이가 “법인카드 접대문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김영란법의 시행 등으로 한국에서도 이런 문화가 사라질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다마키 다다시 1983년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입사해 30년 가까이 경제 전문기자로 일했다. 2001~ 2005년 서울지국장을 역임했다. 현재 법무법인 광장의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인텔과 함께-고든 무어, 나의 이력서』 등의 저서가 있다.
김창우 기자 kim.changwoo@joongang.co.kr
지배구조나 오너 리스크를 의미하나.
“아니다. 그런 부분은 기업마다 상황이 다르고 정답이 없다. 한국 기업은 윗사람의 결론대로 따라가는 톱다운 문화가 특징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회사 안에 있는 잠재적인 아이디어나 기술을 키워내지 못한다. 신사업은 기술혁신 등에 따라 시장이 갑자기 열릴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내에서 묵히고 숙성된 것이 뻥 터지는 거다.”
기업 문화가 문제라는 뜻으로 들린다.
“톱다운도 결단이 빠르다는 점 등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진짜 문제는 외환위기 이후 이어진 인력 다이어트로 여유가 너무 없다는 점이다. 회사가 효율성만 찾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 사람도 마른 체형보다 조금 살이 찐 편이 질병에 강하다는 연구도 나오지 않나. 경쟁력의 원천은 사람이다. 명예퇴직이니 구조조정이니 하는 말은 듣기에는 그럴듯한 말일지는 몰라도 사람에게 써서는 안 되는 단어다. 결국 여유 있는 기업이 승자가 될 것이다.”
외국 기업도 변신에 나서고 있지 않나.
“과거 GE 최고경영자 잭 웰치의 별명이 ‘중성자 폭탄’이었다. 건물과 장비는 남기고 사람만 사라진다는 의미다. 그런 GE도 지난해부터 성과 하위자 10%를 해고하는 ‘10% 룰’을 버렸다. 마른 수건도 쥐어짜는 초효율 경영으로 유명했던 도요타는 올 8월부터 사무직과 개발직 사원 2만5000명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2시간만 출근하는 재택근무제를 도입했다. 몇 년씩 ‘위기 대응’이라며 오전 5시, 6시에 출근하고 야근·휴일 근무를 강요하는 회사가 좋아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다마키 전 지국장은 1987년 연세대 외국어학당에 다닐 때 대통령 직선제 요구 시위를 경험했다. 최근에는 촛불시위를 취재하기 위해 방한한 일본 언론인들을 이끌고 광화문에 나가느라 토요일마다 바쁘다고 한다. 이번에 책을 내면서 91년 5400만 엔에 샀던 도쿄의 아파트를 7년 후 2100만 엔에 팔았던 경험을 담았다. 부제가 ‘잃어버린 20년이 던지는 경고’다.
한국 부동산이 일본처럼 거품이라고 보나.
“버블은 정의가 어렵다. 한국 부동산 값이 정상적인지는 잘 알 수 없다. 분양 경쟁률이 지나치게 높고 전세와 매매 가격 차이가 없는 것 등은 정상적인 상황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 관심은 한국의 거품이 터지느냐 여부가 아니다. 다만 일본에서 보듯이 앞으로는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일은 어려워질 것이다. 과거에는 30년간 배워 30년간 일했지만 수명이 늘어나면서 은퇴 후에도 30년을 살아야 하는 30-30-30 시대가 됐다. 여기에 적응해야 한다.”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한국 경제구조 역시 일본처럼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뉴노멀(New Normal)로 보고 거기에 맞춰 정책과 노후 계획을 짜야 한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에 달하기까지 한국은 자랑스러운 기적적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이제는 성장 못하는 것이 당연한 현상이다. 그동안 모은 국부로 버텨야 하고, 또 버틸 만하다.”
일본의 사례를 반복하는 것 아닌가.
“인구나 산업구조 면에서 비슷하다. 앞으로도 비슷한 길을 갈 것이다. 자연스럽게 사회구조가 바뀌고 적응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10년 전에는 아침에 지하철에서 고령자들을 보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등산복 차림의 은퇴자들을 자주 만난다.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게 되면 버블경제 시대보다 소비가 줄게 된다. 노후 준비를 위해 돈을 아끼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이 같은 변화 과정을 되도록이면 빨리, 덜 아프게 치르는 데 집중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어떤 대책이 있을까.
“인구 5000만 명에 소득 3만 달러인 시장이 세계적으로도 작은 게 아니다. 한국 기업들은 해외 개발도상국과 다른 기업들이 진출하지 않은 분야만 성장 분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저성장 시대에 맞춰 유통산업 혁신 등을 통해 시장을 창출해내는 것도 혁신이다. 한국의 물가는 비정상적으로 비싸다. 해외여행을 가면 예전에는 명품을 사왔지만 이제는 치약·칫솔·볼펜·초콜릿 같은 생활필수품을 사온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일본에서도 유니클로가 품질이 나쁘지 않은 플리스 재킷을 반값에 내놓아 98년에만 200만 장, 이듬해에는 850만 장을 팔았다. 가격과 품질에 민감해진 소비자들의 트렌드를 읽어야 한다.”
다마키 전 지국장은 얼마 전 강남의 일본 식당에 초대받아 갔다고 한다. 코스 요리가 15만원부터 시작하는 비싼 곳이었는데도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초대한 사람은 “좋아하는 것으로 고르라”고 권했다. 일본에서 국회의원과 식사를 한 경험도 들려줬다. 의원 비서가 1인당 3672엔(약 3만7000원)이라고 알려줬고 참가자들은 더치페이를 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차이가 “법인카드 접대문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김영란법의 시행 등으로 한국에서도 이런 문화가 사라질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어떤 부분부터 바꿔야 할까.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개선해야 한다. 열심히 일하면 그에 맞는 대가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조금씩이라도 체감하는 삶의 질이 높아져야 사회 전체적으로 행복감을 느끼는 분위기가 될 것이다.”
세계 경제 환경은 갈수록 불투명해진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변수가 너무 많아져서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다. 달러 강세지만 옛날처럼 엔화·원화 약세로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예측이 있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달러로 채권 발행하는 신흥국들이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이젠 G7도 G2도 아니고 구심점이 사라진 G0 상황이다. 리스크 관리 쪽에 중점을 둬야 할 것이다.”
다마키 다다시 1983년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입사해 30년 가까이 경제 전문기자로 일했다. 2001~ 2005년 서울지국장을 역임했다. 현재 법무법인 광장의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인텔과 함께-고든 무어, 나의 이력서』 등의 저서가 있다.
김창우 기자 kim.ch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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