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8년, 다시 신사임당이 문화계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26일 첫 방송된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가 도화선이다. 현대와 조선을 오가는 이 퓨전사극은 사임당 신씨를 산수화를 잘 그린 천재 화가로 묘사한다. 사임당이 그림과 시문(詩文)에 능한 예인이었음은 여러 기록이 증언한다. 다만, 그의 이름으로 전해오는 그림은 주로 화조(花鳥)나 초충(草蟲)에 한정됐다. 게다가 48세에 타계한 사대부집 안방마님이 전문 화가보다 더 많은 작품을 생산했다는 데 의문부호가 달린다.
이달 중순 이순원 작가는 ‘정본(定本) 소설’이란 제목까지 붙인 신작 『사임당』을 발표했다. 이씨는 사임당의 기존 이미지가 대학자 율곡을 빛내기 위한 들러리에 충실한 것이었다고 반박했다. 그렇게 잘 그렸다는 사임당의 산수화가 몽땅 사라진 배경을 “유교 사회에서 아녀자가 어찌 바깥출입을 하며 그림을 그릴 수 있는가”라는 편견 탓에 폐기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술사학자 백인산씨는 “율곡이 모친의 행장(行狀)을 쓴 글, 동시대 문인들의 언급에도 신묘한 산수도와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포도 그림에 대한 칭찬만 있지 초충이나 화조에 관한 내용은 없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율곡학파의 3대 수장이었던 우암(尤庵) 송시열(1607~89)을 추종한 후학들이 신사임당의 실체보다도 우암에 의해 규정된 모습을 퍼뜨렸기에 이런 왜곡이 일어났다는 가설이 가능해진다. 조선 후기 들어 율곡학파가 득세하자 사임당의 그림을 가문의 위상을 담보하는 문장(紋章)처럼 여겨 너도나도 한 점 걸기를 원하니 모작과 위작이 횡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무심코 주고받던 5만원권 지폐를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자. 신사임당의 초상 바탕에 그의 대표작 ‘포도’가 디자인돼 있다. 담백하면서도 섬세한 묘사, 당찬 기백과 우아한 정취를 아우른 솜씨가 당대 최고 여성 화가로 손꼽힌 저력을 보여준다. 소품이 이러할진대 ‘몽유도원도’의 화원 안견에 버금간다는 산수화는 어땠을까. 누군가 소중히 지켜온 사임당의 산수화가 460여년 만에 기적처럼 나타난다면 율곡의 어머니가 아닌 조선 대표 산수화가의 부활이 될 터인데.
정재숙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