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에 생물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인간 세포에는 23쌍의 염색체가 들어 있고 그중 한 쌍이 이른바 성염색체인데, 그 한 쌍의 염색체가 크기나 모양이 서로 동일하면 여성(XX)이 되고 다르면 남성(XY)이 된다. 그러나 성을 결정하는 메커니즘은 이뿐이 아니다. 새와 일부 파충류에서는 정반대의 시스템이 작동한다. 한 쌍의 성염색체가 동일하면 수컷(ZZ)이 되고 다르면 암컷(ZW)이 된다. 메뚜기, 귀뚜라미 그리고 바퀴벌레의 수컷은 아예 성염색체가 하나뿐(XO)이다. 수벌이나 수개미는 성염색체뿐 아니라 염색체 모두를 쌍이 아니라 한 짝씩만 갖고 있다. 염색체의 양으로만 보면 수벌과 수개미는 그야말로 반편이다.
황당하게도 성 결정을 아예 환경 조건에 내맡기는 동물도 있다. 대표적으로 악어와 거북이의 경우 알이 부화하는 과정에서 온도에 따라 암수가 갈린다. 악어는 중간 온도에서는 수컷으로 태어나고 특별히 춥거나 더우면 암컷이 된다. 거북이의 경우에는 온도가 낮을수록 수컷이 많이 태어나고 높아지면 암컷이 많아진다.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이들의 성비가 널을 뛰기 시작했다. 지구의 평균온도가 빠른 속도로 상승하면서 지나치게 많은 암컷 거북이 태어나고 반대로 수컷이 너무 희귀해져 자칫 멸종에 이를 것이라는 섬뜩한 예측이 나와 있다.
하지만 영국왕립학회보B 최신호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이 예측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암컷이 많아지긴 했어도 소수의 수컷이 여러 암컷과 짝짓기를 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어 개체군의 크기는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연구진은 대신 온도가 너무 많이 오르면 알들이 부화하지 못하고 익어버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바닷가 모래밭의 온도가 섭씨 35도까지 오르면 부화율이 5%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왜곡된 성비가 문제가 아니라 '삶은 귀란(龜卵)'이 걱정이다. 어미 거북이 이 같은 기후변화를 감지하고 좀 더 서늘한 바닷가를 찾으면 좋으련만 아직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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