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 인플루엔자로 인한 가금류 살처분이 어느덧 연례행사가 된 듯싶다. 이번 바이러스가 특별히 독한 건지 아니면 정국이 혼란한 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그랬는지 역대 최대 규모의 살처분이 자행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불과 두 달 만에 무려 2700여만마리의 닭이 살처분됐다. 이 중 2300여만마리가 달걀을 얻기 위해 사육되던 닭이었다. 전체 산란계의 3분의 1 이상이 사라지자 급기야 미국에서 달걀을 수입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달걀의 색이 갈색이 아니라 흰색인 걸 보며 사람들이 새삼 이러쿵저러쿵 신기해한다.
예전에는 우리나라에도 흰 달걀이 더 흔했다. 한때 우리도 레그혼이라는 품종을 주로 키웠기 때문에 가게에서 파는 달걀은 거의 다 흰 달걀이었다. 나는 달걀을 썩 즐기는 편은 아니다. 어렸을 때 시골 할머니께서 한동안 닭을 제법 많이 기르셨는데, 방학 때 내려가면 끼니때마다 몇 개씩 삶아주고 부쳐주고 하시는 바람에 조금 질린 것 같다. 하지만 매일 닭장에 들어가 달걀을 걷어오는 일은 더할 수 없이 즐거웠다. 갓 낳아 따끈따끈한 달걀을 손에 쥐는 맛이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레그혼 암탉들 사이에 토종닭처럼 생긴 얼룩 닭이 두어 마리 끼어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달걀 바구니에는 가끔 흰 달걀 사이에 노란 달걀이 담겼다. 할머니는 노란 달걀을 따로 뒀다가 몰래 막내 삼촌에게 먹이곤 하셨는데 노른자가 유난히도 진해 보였다.
우리나라 가게에서 흰 달걀이 사라진 배경에도 비슷한 감정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거듭된 연구에도 불구하고 영양과 맛에서 흰 달걀과 노란 달걀은 아무런 차이가 없단다. 다른 사료를 먹이지 않는 한 영양가나 맛이 달라질 까닭은 없다. 미국 식료 가게에는 대개 두 종류의 달걀이 나란히 진열돼 있다. 노란 달걀이 조금 비싼 편이다. 그 이유는 그저 노란 달걀을 낳는 얼룩 닭이 몸집이 더 커서 사료비가 더 많이 들기 때문이란다. 노란 달걀의 노른자가 실제로 더 노란 건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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