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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07] '아하! 순간'

바람아님 2017. 2. 22. 23:44
조선일보 2017.02.21 03:09

욕조에 몸을 담그자 물이 넘쳐 흐르는 걸 보며 들쭉날쭉한 물건의 부피를 재는 방법을 찾은 기쁨에 벌거벗은 채 "유레카(Eureka!)"를 외치며 그리스 시라큐스 거리로 달려나갔다는 아르키메데스. 정원에 앉아 있다가 머리 위로 사과가 떨어지는 바람에 졸지에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는 뉴턴. 과학계에는 이처럼 통찰과 창의의 '아하! 순간' 설화가 회자된다.


오늘은 64년 전 생물학자 제임스 왓슨이 DNA의 구조를 떠올린 날로 유명하다. 우연한 기회에 킹스칼리지의 로절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이 촬영한 X선 사진을 보고 나선 구조를 확신했지만 염기들이 어떻게 규칙적으로 사슬을 이루고 있는지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1953년 2월 21일 새벽 왓슨은 아무도 없는 연구실에 나와 책상을 말끔히 치운 다음 빳빳한 도화지로 오려 만든 염기 분자 모형을 이리저리 끼워 맞추고 있었다. 허구한 날 같은 염기끼리의 결합만 궁리하던 그는 불현듯 서로 다른 염기끼리 짝을 지어보다가 놀랍도록 가지런히 꽈배기 모양으로 정렬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저서 '이중나선'에 이 순간을 "하늘에라도 날아오를 듯한 기분"이라고 적었다.


왓슨은 22세 젊은 나이에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박사 학위를 하고 코펜하겐대를 거쳐 영국 케임브리지대 캐번디시연구소에서 물리학자 프랜시스 크릭과 공동 연구를 시작한다. 둘은 그들이 몸담은 학문만큼이나 다른 사람들이었다. 수다스럽고 치열한 크릭은 거의 매일 오후 테니스나 치고 툭하면 머리를 식힌다며 영화나 보러 다니는 왓슨을 못마땅해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문제의 핵심만 파고드는 '분석적 사고'가 빈둥거리며 때로는 먼 산도 바라볼 줄 아는 '통찰형 사고'보다 문제풀이 효능이 오히려 떨어진다는 인지심리학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대놓고 농땡이를 치라는 뜻은 아니다. 왓슨 역시 "영화를 보면서도 나는 염기 문제를 한시도 잊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아하! 순간'은 몰입하는 자에게만 찾아온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