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연구학교로 지정되는 바람에 입학식도 치르지 못한 경북 문명고 사태가 어쭙잖은 진영 논리로 빠져들고 있다. 민주노총과 전교조가 진정 마지막 학교 하나마저 낙마시켜 정부 정책을 완벽하게 초토화하려 하고 있다면 그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그런가 하면 교육부가 이제 와서 다양성 훼손을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도 의아스럽다. 막강한 재정과 조직을 등에 업고 교과서 다양성을 저격하기 시작한 건 오히려 정부였다. 검정과 국정의 공존은 애당초 불가능했을까?
2015년 11월 생물다양성협약(CBD) 총회 참석차 캐나다 몬트리올에 갔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TV를 켜니 마침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자신의 내각 수반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내각의 절반을 여성으로 선임하겠다고 공언한지라 나는 숫자까지 세며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았다. 알고 보니 그의 내각에는 15명의 여성뿐 아니라 터번을 쓴 남성 둘과 장애인도 한 명 포함돼 있었다. 덩그런 이국 호텔 방에서 미처 시차도 적응되지 않은 채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평생 자연의 다양성을 관찰했지만 그처럼 아름다운 다양성은 본 적이 없다.
다윈은 이 세상이 이데아(Idea)와 그것의 불완전한 반영들로 이뤄져 있다는 플라톤 철학을 뿌리째 흔들었다. 자연에 실재하는 온갖 변이가 바로 사물의 원형(原形)이며 변화의 원동력이다. 다양성은 이런 변이들의 자연스러운 공존이다. 변이에는 서열이 없다. 그 어떤 변이에게도 다름을 제거하거나 배척할 권한은 주어지지 않았다. 스스로 존재하려는 것들은 모두 나름의 권리를 지닌다. 다양성은 갑이 을에게 베푸는 관용이나 배려 따위의 결과가 아니다. 다양성은 종종 혼란을 잉태하지만 마땅히 존재하는 실체이다. 트뤼도 총리의 국정 운영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은 짐작하고도 남으리라. 하지만 내각의 절반을 왜 여성으로 채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구차하고 긴 답변 대신 그가 던진 한마디―"2015년이잖아요." 구태로 회귀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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