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3.04 03:01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산거 삽살개가 사립문서 마구 짖는데 창밖에는 흰 구름이 자욱하구나. 돌길인데 어느 누가 찾아오겠나? 봄 숲에선 새만 절로 울고 있구나. 山居 柴扉尨亂吠(시비방난폐) 窓外白雲迷(창외백운미) 石逕人誰至(석경인수지) 春林鳥自啼(춘림조자제)
김해의 선비 죽암(竹庵) 허경윤(許景胤·1573~1646)이 지었다. 남명 조식 선생의 제자로서 고향에서 제자를 교육하며 평생을 마친 분이다. 깊은 산중에 살고 있는데 삽살개가 뜬금없이 사립문을 향해 컹컹 짖어댄다. 이 깊은 산골에 사람이 올 리 없는데 저놈이 왜 저렇게 짖을까? 창을 열고 내다보았다. 사람은커녕 흰 구름이 자욱하게 내려앉아 주위를 분간할 수 없다.
그러면 그렇지 험한 돌길 헤치고 나를 찾아올 사람은 없다. 개 짖는 소리에 친구가 찾아왔나 기대하고 밖을 내다본 내가 우습다. 그 순간 숲 속 어디선가 새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삽살개가 혹시 저 새를 향해 짖었던 것일까? 겨우내 누군가를 마냥 기다리던 마음을 저 새가 흔들어 놓았다. 봄이 훌쩍 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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