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식목일이다. 그러나 많은 지방자치단체는 3월에 이미 나무 심기 행사를 마쳤다. 산림과학원에 따르면 나무를 심기 알맞은 기온은 섭씨 6.5도 안팎이다. 그런데 최근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인해 정작 4월 5일에는 전국 대부분 지방의 평균 기온이 10도를 웃돈다. 이 무렵에 나무를 옮겨 심으면 이미 너무 많이 자란 뿌리가 새 땅에 제대로 내리지 못해 고사할 위험이 크다. 그래서 서울환경운동연합은 벌써 8년째 4월 5일보다 1주일가량 일찍 '온난화 식목일' 행사를 열고 있다.
식목일을 현실에 맞게 앞당기자는 시민들의 주장에 정부는 자꾸 역사성과 홍보 비용 등 정무적인 설명을 앞세운다. 올해로 벌써 72회를 맞는 식목일의 역사와 전통을 훼손할 수 없다지만, 우리나라 식목일은 조선총독부가 1911년 4월 3일로 지정한 것을 해방 이후 미군정청이 1946년 4월 5일로 변경해 오늘에 이른다. 남이 정해준 기념일의 역사성이 뭐 그리 소중할까 싶다. 물론 4월 5일은 양력으로 24절기의 다섯째인 청명(淸明)이 드는 날이다. 우리 조상은 청명 무렵에 가래질로 흙을 고르며 논농사를 준비했다. 성종은 1493년 이날 동대문 밖 선농단(先農壇)에서 문무백관과 더불어 제를 올린 뒤 몸소 농경 시범을 보였다고 한다. 1910년에는 순종이 친경(親耕)과 함께 나무도 심었다고 전해진다.
역사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4월 5일이 거의 전 국민이 기억하는 식목일로서 상징성을 지니는 것은 사실이다. 유엔은 해마다 3월 21일을 '세계 숲의 날', 그리고 그다음 날인 22일을 '세계 물의 날'로 기리고 있다. "숲의 날에 나무 심고 물의 날에 물 주자"는 캠페인이 그렇게까지 엄청난 행정력과 홍보 비용을 필요로 할까 의문스럽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는 계속될 것이고 그에 따라 번번이 식목일을 새로 지정할 수도 없는 일이다. 다만 이런 논의가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나무의 안녕과 행복을 먼저 고려하는 방향으로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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