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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14] 사랑과 집착

바람아님 2017. 4. 19. 23:46
조선일보 : 2017.04.11 03:12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이 세상에 사내로 태어나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나는 그 말을 팝의 디바 셀린 디옹에게서 들었다. 노래 '파워 오브 러브(The Power of Love)'에서 디옹은 "나는 당신의 여인이고 당신은 내 남자이기 때문입니다"라고 고백한다. 남자가 진정으로 듣고 싶어하는 말은 '대통령 각하'나 '노벨상 수상자'가 아니다. 오로지 한 여인으로부터 받는 온전한 사랑이 천하를 얻은 것보다 훨씬 값지다는 걸 남자는 가슴으로 안다. 하지만 이어서 디옹이 "당신이 나를 부르기만 하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겁니다"라고 노래할 때면 나는 어느덧 그 사랑이 섬뜩해진다. 당신이 나를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조건부 사랑을 노래하는 것 같다. 나는 당신을 위해 모든 걸 바칠 준비가 돼 있는데 당신도 그런지 지켜보겠다는 집착으로 들린다.

사랑과 집착은 때로 종이 한 장 차이다. 나를 온전히 바칠 때 우리는 당연히 상대도 나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놓으리라 기대한다. 그러다 기대가 무너져내리면 그 빈 공간을 순식간에 증오의 독버섯이 채운다. 이 같은 일은 남녀 사이뿐 아니라 연예인과 팬, 그리고 정치인과 그의 추종자들 사이에서도 빈번히 일어난다. 맹목적인 추종은 흠모의 대상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결국 스스로를 황폐하게 만든다. 요사이 이런 현상을 우리는 개인뿐 아니라 집단 수준에서도 자주 목격하고 있다. 사랑이 집착의 늪으로 빠져드는 걸 막으려면 사랑의 대상과 적당한 거리를 둬야 한다. 사랑은 가슴으로 하는 게 아니다. 사랑도 머리가 한다.

레바논 시인 칼릴 지브란의 '함께 있으되 거리를 두라'는 현명한 사랑의 거리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알려준다. '함께 있으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중략)/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에선 자랄 수 없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