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초대 원장이 되어 부임한 국립생태원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환경부의 요청으로 2008년 일년을 송두리째 바치며 기획을 총괄했건만 이명박 정부 내내 건립 과정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기획에 쏟아부은 내 열정은 그렇다 치더라도 무엇보다 국민의 세금이 아까웠다. 하지만 주변 야산의 나지막한 능선을 따라 일렁이는 파도 모양으로 지어진 에코리움(Ecorium)만큼은 걸작이었다. 욕심 같아선 규모가 두 배 정도는 됐더라면 싶었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생태전시관으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기대하고 들어선 로비는 한가운데 정체불명의 조형물 하나가 쭈뼛거리며 서 있을 뿐 그저 휑하니 설삶은 공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이 몰려오자 졸지에 도떼기시장의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에코리움은 물론 전시를 위해 만든 공간이지만 나는 그곳이 놀이공원으로 전락하는 게 싫었다. 자연 생태의 기능과 소중함을 느끼고 익히는 배움의 공간이 돼야 했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 소담스러운 도서관을 만들고 '어린이 생태글방'이라 이름 지었다. 여전히 떠들고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있지만, 어느덧 조용히 책을 읽고 도란도란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는 아이도 제법 많아졌다. 좋은 변화는 채비해야 오는 법이다.
지난 4월 23일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었다. 이 땅의 출판계는 벌써 몇 년째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을 겪고 있다. 출판 불황은 경제를 어렵게 할 뿐 아니라 국가의 미래마저 좀먹는다. 한국출판인회의는 대선을 겨냥해 '책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를 비롯한 7대 출판 단체들은 이미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과 독서·출판 진흥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다음 대통령은 역대 가장 어려운 시점에 국정 운영의 책임을 떠맡게 된다. 나는 리더(leader)는 무엇보다 먼저 리더(reader)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선 주자 중 누가 진짜 책벌레인지 이 곤충학자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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