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 초기의 소규모 부족사회는 모든 구성원이 함께 참여해 중지를 모으는 직접민주제를 채택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조직의 규모가 커지며 모든 사람이 모든 현안의 결정 과정에 참여하기 어려워지자 대표자를 선출해 정책 문제를 처리하도록 하는 대의민주제가 등장했다. 지금은 대의민주주의가 대세지만 여전히 직접민주제를 실행하는 곳도 제법 많다. 매사추세츠를 비롯한 미국 동북부의 여러 주와 스위스 등 몇몇 유럽 지방에서는 아직도 마을회의(town meeting)에 주민들이 모여 함께 정책을 입안하고 예산을 결정한다.
우리가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러 투표장으로 모여들 5월 9일 무렵이면 전국의 여왕벌들은 분봉(分蜂)을 준비한다. 차세대 여왕벌로 성장하는 딸들에게 나라를 물려주고 새로운 집터를 찾아 나선다. 추종하는 일벌들에게 "나를 따르라"며 호기를 부리지만 정작 새 집터를 결정하는 권한은 전적으로 일벌에게 있다. 제가끔 자신이 발견한 집터 정보를 열정적인 춤으로 홍보하는 정탐벌들의 경합은 끝내 하나의 제안으로 수렴된다. 정탐벌들은 자신보다 훌륭한 정보를 가진 정탐벌이 나타나면 기꺼이 춤추기를 멈추고 합류한다. 인간 마을회의보다 훨씬 신사적이고 합리적인 민주주의를 운영한다.
꿀벌 나라는 언뜻 여왕벌이 군림(君臨)하며 통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벌이 군림(群臨)한다. 아무 힘도 없어 보이는 '양(羊)'들이 '군주(君)'를 둘러싸면 이내 '무리(群)'를 이룬다. 내일은 4·19혁명 57주년 기념일이다. 이 땅의 양들은 얼마 전 촛불을 손에 들고 직접민주주의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입증했다. 고대 사회에 비해 인구는 엄청나게 늘었지만 SNS와 같은 기술의 발달로 그 어느 때보다 직접민주제가 수월해졌다.
대권 주자들은 너도나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대안으로 내각제 성격의 제도를 제안하지만 국민은 국회도 믿지 못한다. 나는 마을회의와 같은 좀 더 확실한 직접민주주의를 꿈꾼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마을회의 모두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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