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정의롭다는 척사론적 의식
적폐 청산에 박근혜가 침몰했듯
진보도 그 블랙홀에 빠지면 비극
박근혜는 맹골수로에 침몰한 세월호에 그 언어를 적용했다. 해운사, 항만청, 재난구조본부 간에 얽히고설킨 비리의 덩어리를 적시하고 ‘국가 개조’를 눈물로 다짐했다. 국가 개조 또한 1920년대 일제가 내선융화를 다지려 유포한 제국의 용어였다. 정작 필요한 것은 지도자인 나의 참회였지만 개조의 대상은 너, 국민이었다. 수장된 어린 생명에 넋을 잃고 가슴에 바람골이 뚫린 국민이 참다 못해 적폐의 방향을 거꾸로 청와대로 돌렸다. 소소한 사건들이 퇴적되자 청와대에 누적된 폐단은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지난주 박근혜는 적폐를 안고 광화문 수로 깊이 가라앉았다.
박근혜는 역사의 전선에서 물러갔다. 그런데 그가 남긴 언어가 정치권의 혼을 지배하고 있음은 이상한 일이다. 너도나도 적폐 청산을 외친다. 가장 즐겨 사용하는 대권후보가 문재인이다. 대세론의 주인공인 그는 ‘적폐’를 입에 달고 다닌다. 권력 적폐, 안보 적폐, 재벌 적폐, 이런 식이다. 청와대·검찰·국정원 등 권력 적폐 청산 3대 방안을 내놓더니 재벌 적폐 청산 3대 원칙을 선언했다. 안보 적폐는 병역기피, 방산 비리, 안보 무능, 종북몰이 등 네 가지다. 1000여 명의 교수로 가득 찬 그의 캠프는 적폐 리스트 생산기지다. 그 기지에는 적폐로 규정된 부위를 칼로 내리칠 무사(武士)들이 출전 대기 중이다. 그게 적폐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혁신은 혁파를 수반한다. 깨부수는 것이다. 모조리 깨서 패러다임을 교체하는 ‘파괴적 혁신’은 산업에서는 가능하지만 정치와 사회에서는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완전한 단절은 혁명이다. 대신 시대적 연속선상에서 일부를 도려내는 ‘존속적 혁신’이 성공 확률이 높다. 유럽을 선진국으로 밀어올린 것은 제도의 존속적 혁신이었다. 2005년 독일 사민당 슈뢰더 총리는 하르츠 피어(Hartz IV)를 만들어 기민당에 건네줬고 메르켈 총리는 그대로 실행했다. 독일 경제가 피어났다. 스웨덴은 사민당이나 보수당이나 100년간 지킨 최고의 정책 목표가 완전고용이었다. 사민당이 고안한 연대임금 정책을 보수당이 그대로 물려받는다. 독일의 공민(Mitbürger) 개념은 보수·진보의 공통 출발선이며, 스웨덴의 ‘인민의 집’(people’s home) 역시 보수와 진보가 동거하는 공통 이념이다. 이것도 부족해 가끔 연정(聯政)을 한다.
문재인 후보와 진보 진영은 “적폐의 당사자와 어떻게 손을 잡는가”라고 정의롭게 말한다. 쓰러진 보수를 일으켜 세워야 진보도 국회의 거부권을 뚫는다. 안보 무능을 적폐로 지목하면서 사드(THAAD)에 대해선 가부(可否)를 답하지 않는다. 이제 와서 물리면 평지풍파가 일어날 것임을 알면서 말이다. 청산해야 할 것은 적폐 청산이라는 언어다. 그 속에 고착된 적의의 정치고, 홀로 정의롭다는 척사론적 의식이다. 사회는 생각과 경험이 다른 사람들의 군집, 정치는 그런 사람들을 모이게 만드는 포용적 기술이다. 적폐 청산에 박근혜가 침몰했듯 진보도 자신이 만든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면 나라의 비극이다.
송호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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