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법방해 혐의에 관한 제임스 코미 전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의회 증언을 보며 떠오른 단어가 하나 있었다. 바로 '신뢰'였다. 거듭되는 불편한 상황에서 그는 대통령이 나중에 말을 바꾸거나 거짓말을 할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모든 대화 내용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기록해뒀단다. 그래서인지 그가 증언하는 트럼프의 언사는 마치 트럼프 본인이 얘기하는 것처럼 생생했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냉철함과 적확한 언어 구사 능력을 보며 우리는 언제나 저런 공직자를 가져보나 부러울 따름이었다.
코미 전 국장의 증언은 토씨 하나까지 믿음직스러웠다. 그러나 그의 증언은 어디까지나 일방적 혐의 제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녹음 테이프가 나타나기를 고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버드대가 최근 신입생 10명의 입학을 취소했다. 입학생들 간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페이스북 채팅방에 쏟아진 아동 학대, 성적 비하, 인종차별 발언이 문제가 됐다. 스무 살도 안 된 어린 친구들의 치기 어린 실수에 지나치게 가혹한 처벌이라거나 비록 욕설일망정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처사라는 비난에도 대학의 입장은 단호하다.
삶의 흔적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세상이다. 지난 대선에서 한 후보는 대학생 시절 친구의 성폭행 시도를 도운 무용담을 책에 늘어놓았다가 곤욕을 치렀다. 인사청문회장에 나와 앉은 고위 공직 지명자들은 평생 해온 일과 언행이 적나라하게 발가벗겨진 채 종종 딱히 더 깨끗할 것도 없는 이들에게 천하의 몹쓸 사람으로 내몰리는 수모를 겪는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은 이미 전국 곳곳에 설치된 CCTV에 낱낱이 기록되고 있다. 하물며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옛말이 무색하도록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진해서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말의 향연은 또 어쩌란 말인가? 언제 독화살이 되어 나를 겨눌지 아무도 모른다. 후보 시절은 물론 대통령이 돼서도 트위터를 끼고 사는 트럼프의 몰락은 시간문제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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