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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의 종횡무진 인문학] 이탈하는 러시아… 브레진스키가 편히 눈감을 수 있을까

바람아님 2017. 7. 7. 09:51

(조선일보 2017.07.07 박상현 기자)


[김시덕의 종횡무진 인문학]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략적 비전'


지난 5월 26일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前)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사망했다. 

미국과 구소련 간의 냉전 체제가 완화되는 데탕트 시대에 미국 외교를 이끌었던 그는 저서 

'거대한 체스판'(1997)에서 미국의 세계 전략을 논하며 세계의 미래를 대담하게 예측한 바 있다. 

유라시아 대륙이라는 거대한 체스판을 미국이 어떻게 통제해야 할 것인지 이야기한 이 책에서 나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미(反美) 동맹이 장기적으로 계속될 가능성은 없다는 그의 주장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는 어떠한 이념을 공유하지 않으면서 그저 제1세계에 적대하기 위해 맺은 동맹이 얻을 것은 많지 

않다고 단언한다. 러시아는 중국에 내줄 것이 없고, 중국은 러시아를 동등한 파트너가 아니라 

아랫사람처럼 대우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시베리아 고고학 연구자 강인욱 경희대 교수(사학과)는 지난 100년간 유라시아를 지배한 것은 러시아어였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녔던 국가 가운데 하나였던 러시아를 부활시키려는 푸틴이 

중국의 '부하' 역할에 만족할 리 만무하다. 또 러시아는 청나라에서 할양받은 아무르강 연안 및 연해주 지역에 대해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설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지역의 개발에 한국과 일본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지 않은가.


'거대한 체스판'으로부터 20년 뒤인 2012년에 출간되고 지난해 번역된 '전략적 비전'(아산정책연구원 刊)에서 브레진스키는 

'확장된 서방'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서방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협력해서 유라시아를 안정시킨다는

이 개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두 나라가 반드시 포섭되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터키와 러시아다.


푸틴은 러시아는 극동이든 남부 지역이든 모두 서유럽 문화권에 속해 있다고 말해왔고, 

집권 초기에는 나토(NATO) 가입까지 고려했었다고 고백했다. 

터키 역시 EU에 가입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브레진스키의 예언은 분명히 실현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 그리고 시리아 문제를 거치면서 푸틴의 러시아는 서방 세계와 정면으로 충돌하기에 이르렀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미·러 양국의 관계가 좋아지리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이 역시 좌초되었다. 

에르도안의 터키에서는 케말 파샤의 정교분리 원칙이 점점 무너지고 있다. 

브레진스키가 편히 눈감았을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