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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41] 믿음 엔진

바람아님 2017. 10. 18. 10:09
조선일보 2017.10.17. 03:11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얼마 전 스코틀랜드의 대학생들이 학교 미술관 전시를 농락한 사건이 벌어졌다. 수퍼마켓에서 구입한 파인애플을 마침 비어 있는 유리 전시관 위에 올려놓고 나흘 후에 돌아와 보니 버젓이 유리 전시관 안에 모셔져 있었다. 미술관 학예사들은 기왕에 벌어진 일인 만큼 그 파인애플을 계속 전시하기로 했다. 그 전시회의 주제가 바로 '다시 보라(Look Again)'였다. 지난해에는 17세 소년이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마룻바닥에 안경을 벗어놓았더니 기자들과 관람객들이 앞다퉈 사진을 찍어대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예술 작품의 경계는 1917년 마르셀 뒤샹이 자신의 이름을 새긴 변기를 작품으로 전시하면서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1961년 바로 오늘은 뉴욕 현대미술관이 씻을 수 없는 전시 오류를 범한 날이다. 앙리 마티스의 작품 'Le Bateau (보트)'를 거꾸로 매단 것이다. 반추상 작품이라 위아래를 구별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전시된 지 무려 47일 만에 월스트리트에서 증권 중개 일을 하던 평범한 프랑스 여성에 의해 발견됐다는 게 문제다. 한 달 반 동안 적어도 10만명 이상의 관람객과 미술 전문가들이 거꾸로 걸린 작품을 감상하며 때론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하기야 우리는 나무의 음영이나 바위의 들쭉날쭉함에서 성모 마리아와 예수님의 얼굴을 찾아내는 존재들이다. 기우제를 지내면 하늘이 감동해 비를 내려줄 것이라 믿는다. 임금님이나 추장님이 견디다 못해 기우제를 올릴 때쯤이면 대개 비가 올 무렵이다. 과학 잡지 스켑틱(Skeptic)의 발행인 마이클 셔머는 그의 책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에서 우리 인간은 두뇌에 '믿음 엔진(belief engine)'을 장착하고 우연과 불확실성으로부터 의미 있는 패턴을 찾도록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고 현명하게 대처해왔지만 그 과정에서 불행하게도 지극히 비이성적인 믿음도 수반된 것이다. 믿음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