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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43] 유전자 편집 시대

바람아님 2017. 11. 1. 07:55

조선일보 2017.10.31. 03:13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책만 편집하는 게 아니라 유전자를 편집할 수 있는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섰다. 하버드대 데이비드 류(David Liu) 교수 연구진은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염기 조성을 편집하는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네이처' 최신호에 게재했다. 수십억 개의 염기로 이뤄진 인간 유전체의 공정은 우리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기계 설비 공정과도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정확하다. 구태여 수치화하자면 99.99…%에 이른다. 그러나 이 지극히 낮은 확률에도 불구하고 일단 오류가 발생하면 치명적인 유전 질환을 앓게 된다.

/조선일보 DB

유전자 가위 기술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초미세 가위로 유전체의 일부를 물리적으로 잘라내고 정상적인 유전자 조각을 꿰매 넣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그런 가위가 아니라 단백질로 되어 있는 효소가 잘못된 유전자 부위를 찾아내 화학적으로 교정한다. 이 과정에서 미세하나마 엉뚱한 곳을 건드리면 도리어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이번에 류 교수 연구진은 정확하게 염기 하나만 찾아내 교정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시토신(C)을 티민(T)으로 바꾸고, 아데닌(A)을 구아닌(G)의 대체 염기인 이노신(I)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유전체가 책이라면 철자 하나만 골라 편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연구진은 배양세포를 가지고 수행한 실험에서 태아 시절 헤모글로빈을 만들다가 무슨 연유인지 태어나면서 멈추는 공정을 재가동하는 데 성공했다. 적혈구가 낫 모양으로 변형돼 빈혈을 유발하는 겸상 적혈구 빈혈증(sickle cell anemia) 치유에 청신호가 켜졌다. 하지만 바로 이 시점에서 나 같은 진화생물학자의 우려가 시작된다. 태아 시절 멀쩡하게 잘 가동되던 공정이 출산과 더불어 멈추도록 진화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애써 꺼둔 공정에 갑자기 스위치를 켰을 때 비록 빈혈은 멈출지 모르지만 그로 인해 어떤 다른 엄청난 일들이 벌어질지 지금은 아무도 모른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할까 두렵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