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70년 전 11월 8일 아일랜드에서 괴기 공포 소설 '드라큘라'의 작가 브램 스토커(Bram Stoker)가 태어났다. '드라큘라'는 평론가들로부터 에드거 앨런 포와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에 비견되는 호평을 받았지만 판매는 극히 저조했다. 스토커 자신도 작가라기보다는 당시 유명한 연극배우였던 헨리 어빙 경의 개인 조수로 알려져 있었고, 말년에는 아내가 그의 습작 노트들을 소더비 경매에 내다 팔아 겨우 2파운드 남짓을 챙겼어야 할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하지만 그의 사후에 드라큘라는 소설은 물론 영화로도 세계 각국에서 수백 편이 만들어지며 일종의 문화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드라큘라' 덕택에 흡혈박쥐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그로 인해 박쥐라는 동물 전체가 음산하고 징그러운 이미지를 얻었지만 1000종도 넘는 박쥐 중 흡혈박쥐는 단 3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과일과 곤충을 주로 먹는 귀여운 털북숭이 박쥐들이다. 그러고 보면 동물의 피를 주식으로 하는 척추동물은 극히 드물다. 세 종의 흡혈박쥐와 큰 물고기에 들러붙어 피를 빨아먹는 칠성장어 종류가 거의 전부다. 양서파충류와 조류 중에는 피를 주식으로 하는 종이 하나도 없다. 이에 비하면 모기·벼룩·빈대·진드기 등 피를 빠는 갑각류 동물은 줄잡아 1만4000종에 달한다. 여기에 1000종 가까운 거머리까지 합하면 흡혈 무척추동물의 목록은 한층 길어진다.
무척추동물에 비해 피를 빨아먹으며 사는 척추동물은 왜 이렇게 적을까? 우선 척추동물의 생물 다양성이 상대적으로 작다. 전체 동물 종의 5%에 불과하다 보니 그중에서 피를 먹고 사는 종도 당연히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피가 그리 훌륭한 먹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척추동물에게는 피보다 고기가 훨씬 풍부한 영양가를 제공한다. 요즘도 야생동물을 사냥해 즉석에서 피를 마시며 객기를 부리는 마초 사냥꾼이 있다면 재고하기 바란다. 게다가 야생동물의 피 속에는 검증되지 않은 병원체들이 득시글거린다.
'其他 > 최재천의자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46] 기생충과 문화 수준 (0) | 2017.11.22 |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45] 자연도 짝이 있다 (0) | 2017.11.15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43] 유전자 편집 시대 (0) | 2017.11.01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42] 모기라는 영물 (0) | 2017.10.26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41] 믿음 엔진 (0) | 2017.1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