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시론] 남북 관계 해빙 원해도 最惡은 대비해야 한다

바람아님 2018. 2. 28. 17:58

(조선일보 2018.02.28 신원식 前 합참 작전본부장 예비역 육군 중장)

美·日, 北 미사일 대피 정례 훈련… 우리는 눈치 보며 훈련도 안 해
核 공격 상정해 스위스처럼 민방위체제·방공호 구축해야
적은 비용으로 핵 위협 극복하고 對北 협상·억지력도 높여야


신원식 前 합참 작전본부장 예비역 육군 중장신원식 前 합참 작전본부장 예비역 육군 중장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방북 초청장을 보낸 데 이어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우리 안보 관계

핵심 인사들을 만나고 돌아갔다. 앞으로 남북한 당국 간 대화나 접촉이 빈번해질 것 같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봄이 온다는 기대만큼, 북한의 계략에 말려들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국

가 안보의 기본 원칙은 일시적 정세 변화와 무관하게 최악(最惡)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이런 국가 안보 원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미 하와이주는 작년 12월부터 북핵 대피 훈련을 매월 실시하고 있다.

작년 3월 아키타(秋田)현을 시작으로 전국 26개 지역에서 100회 넘게 미사일 대피 훈련을 한 일본은 올 1월 22일 도쿄 도심

한복판에서 훈련을 벌였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처음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북한을 자극해선 안 된다"는 등의 이유로

훈련 자체를 않고 있다. 남북한 간에 대화 국면이 펼쳐지더라도 최악을 항상 대비하는 게 주권국가로서 기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북한의 항공기 공격 대비에 초점을 맞춘 민방위 체제부터 보완해야 한다.

사실 북한의 공군력은 우리에게 별 위협이 안 된다. 우리 공군력이 압도적 우위인 데다, 장사정포와 재래식 폭탄은 콘크리트

관통력이 없고 활주로 파괴용 특수탄은 관통력이 1m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날아오더라도 인화 물질, 유리창 근처를

피해 견고한 건물이나 지하에 있으면 안전하다. 2010년 북한이 우리 서해 연평도에 수백 발의 장사정포 도발을 했지만

사망자는 야외에 있던 4명뿐이었다는 게 이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북한 공군기 침투를 상정해 형식적으로 이뤄져 온 민방위

대응 체계를 하루빨리 개편해야 한다.


북한 조선중앙TV가 2016년 9월6일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 겸 국무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 탄도로케트

발사 훈련을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조선중앙TV가 공개한 탄도미사일 발사 장면. /조선중앙TV 캡처


정작 치명적인 위협은 핵·미사일 공격이다.

핵이 폭발하면 섭씨 1억도의 열(熱), 초음속 충격파와 초속 50m 폭풍, 방사능이 차례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미국 국방위협감소국은 서울에 100㏏짜리 핵이 터지면 31만명이 즉사하고 사상자는 600만명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이는 현재

서울의 방호 상태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주요국들은 이런 살상력 때문에 핵전쟁을 염두에 둔 민방위 체계를 운용하고 있다.


구(舊)소련의 핵실험 성공(1949년 8월) 이듬해에 미국이 핵 방공호를 중심으로 한 '연방 민방위법'을 제정했고 소련과 유럽

각국이 이를 본떠 민방위 체제를 만든 것이다. 이 방면에서 우리가 가장 본받을 만한 나라는 스위스다.

1963년부터 민방위법에 따라 새 건물을 지을 때 핵 방공호 건축을 의무화한 결과, 스위스에는 주민 거주지와 병원 등에

30만개의 방공호가 있다. 별도로 5100여 개의 공용 방공호도 설치돼 있다. 이는 840만명의 전 국민과 외국인 20만명이

화생방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2주일간 생활할 수 있는 시설이다. 개인별로 1000여만원을 들여 가정용 방공호를 구축하거나

관련 비용을 내면 공용 방공호를 배정해주기도 한다.


우리도 꼭 필요한 방공호만 신축하고 기존 지하 시설을 보강해 관련 시설을 갖추면 적은 비용으로 웬만한 핵 미사일 공격에도

견딜 수 있다. 신축 건물에 대해선 방호 시설 구비를 의무화하면 된다.

실제로 핵무기가 터지더라도 주변 지하철이나 지하 차도·쇼핑몰 등 지하로 가면 열과 폭풍을 피할 수 있다.

여기에 차폐(遮蔽) 장치를 갖추면 추가로 스며드는 열과 폭풍, 방사능까지 막을 수 있다. 방사능은 콘크리트 30㎝,

흙 90㎝ 이상은 통과 못 하고 2주일쯤 지나면 없어진다. 방호복을 입으면 열·폭풍이 지나간 후 야외 활동도 곧장 할 수 있다.

핵무기가 치명적이라고 해도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민방위기본법과 통합방위법·계엄법·비상대비자원관리법·건축법 등 관련 법을 정비해 기관별 임무를 구체화하고

관련 정부 조직과 기능을 보강해야 한다. 조기(早期) 경보와 대피를 위해 군(軍) 중앙방공통제소·민방위경보통제센터와

기관별로 운용하고 있는 화재·범죄·재난 전파 시스템도 연동시켜야 한다. 아울러 정부는 국민에게 핵 위협 발생 시 이에

대비한 행동 요령을 수시로 알려주고 을지훈련과 민방위훈련 때 숙달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북한과 중국·러시아 등 핵 무장국들에 둘러싸여 있다. 설사 북한 비핵화 논의가 시작되더라도 '핵 없는 세상'이

올 때까지 최악을 대비한 안보 체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에 대한 협상력과 억지력도 높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