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포럼>韓美 균열 키우는 '낭만적 민족주의'

바람아님 2018. 2. 27. 10:48
문화일보 2018.02.26. 11:50


북한이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통해 미국과의 대화 용의를 표명했지만,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 의지가 확인되지 않는 한 미·북 간 본격적 대화가 이뤄지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근본적 태도 변화가 없을 경우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한반도 정세는 북핵(北核) 때문에 최고조의 긴장 상태로 빠져들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강력한 대북 압박 정책에서 이탈해 미·북 사이를 중재하겠다는 유화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의 주범 김영철의 방한을 허용한 것은, 문 정부가 우리 국민과 동맹국 미국을 완전히 모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미국은 한국산 철강에 대해 다른 동맹국들은 제외하고 한국만 관세 부과 대상으로 삼았다. 이를 두고 청와대는 안보와 통상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하고 있다. 미국의 패권 질서 아래 있는 한국에 대해 미국이 안보와 통상을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평창’ 이후 대북 정책을 둘러싸고 한·미 간 균열은 문 정부의 ‘낭만적 민족주의 노선’ 때문에 더욱 심해질 것이다. ‘낭만적 민족주의’는 종족과 혈연을 강조하고 ‘하나의 민족’을 내세운다. 혈연적 민족을 중시하는 ‘낭만적 민족주의’의 입장에 서면 정치 체제의 동질성과 이질성의 구분은 의식 속에서 사라지고 ‘반외세(反外勢)’의 논리가 득세하게 된다. 한·미 동맹은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의 동질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된 ‘낭만적 민족주의 노선’에 따른 민족 공조 정책은 문 정부에 이르러 그 극점에 다다르고 있다.


북한은 전방위적 제재를 견디지 못하고 한국 내의 뿌리 깊은 ‘낭만적 민족주의적 정서’를 역이용해 한·미 간을 이간하고 ‘우리 민족끼리’를 내세워 남남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대북 해상 무역 제재 조치를 발표한 후 기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경우 ‘2단계의 군사옵션’을 고려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만큼 북한의 완전 핵 폐기 없이는 실질적 미·북 대화 가능성은 작다.


미국은 현 상황에서 대북 군사 옵션을 선택할 경우 ‘전투’에 이기고 ‘전쟁’에 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을 매우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말처럼 “전쟁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군사력 사용 이후 정치적 단계에 해당하는 북한의 전후 처리 문제와 관련해 중국과 합의를 이루기가 어렵다는 데 미국의 고민이 있다. 미국은 군사 옵션 선택 시 문 정부의 대북 제재 노선 이탈이라는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평창’ 이후 미국의 군사 옵션 선택은 군사 문제를 넘어서는 정치 문제와 관련된 여건 조성이 한·미 관계에서 이뤄졌을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란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 여건 조성과 관련해 떠올리게 되는 것은 6·25 전쟁 당시 미국이 계획했던 ‘에버레디(everready)’라는 이승만 제거 작전이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에 이런 조치를 하긴 어려울 것이다. 미국이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 제기하는 통상 문제는 문 정부의 이탈을 막으려는 ‘대한(對韓) 경제 제재 조치’와 관련이 있다. ‘평창’ 이후 한국이 지금처럼 계속 민족 공조로 기운다면 한·미 관계는 통상과 안보를 포함해 최악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문 정부가 ‘낭만적 민족주의’ 노선에서 벗어나 ‘현실주의적 국제 공조’로 선회하지 않는 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국민과 기업에 돌아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