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4.03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현재 광역자치단체 17개… 조선 八道의 2배 넘는데 '경기북도'論까지 등장
지자체 늘면 공무원만 좋아… 평소엔 '무늬만' 지방자치, 선거땐 '기분만' 지방자치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6·13 지방선거가 눈앞에 다가왔다. 이번 선거는 개헌 이슈와 맞물려 열기가 더욱 뜨겁다.
지난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에 발의한 개헌안에
'연방제에 버금가는 지방분권제' '강력한 지방분권 공화국' 구상을 담았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대통령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동시에 치를 개연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개헌 추진의 불씨가 살아 있는 한 추후라도 지방분권이 헌법 사항으로 다뤄질 공산은 높아진 상태다.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 깊은 간극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문재인표(標) 지방분권형 개헌이 과연 정답인가는 솔직히 의문이다.
무엇을 위한 자치이고 누구를 위한 분권인지 따져 봐야 하기 때문이다.
중앙과 지방 간의 권력 비대칭과 불균형 발전이 그 책임을 통째 지자체의 어정쩡한 헌법적 위상에 돌릴 수는 없다.
자치분권의 발육 부진에는 다른 요인들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지자체 숫자가 너무 많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광역자치단체는 모두 17개이다.
고려시대 오도양계제(五道兩界制)나 조선시대 팔도강산에 비교하면 남한 내 광역 지방 단위는 세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이 가운데는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새로 생긴 곳도 많다.
이번 6·13 선거를 앞두고도 세포분열을 꿈꾸는 광역자치단체가 있다.
해묵은 '경기북도' 설치론에 한강 이북 10개 시·군을 관할하는 '평화통일특별도' 설치안까지 보태졌다.
이렇게 '특별'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광역자치단체 이름 자체가 우스꽝스럽다.
안 그래도 제주도와 세종시는 이미 특별자치도와 특별자치시인데, 그렇다면 나머지는 모두 '일반자치'라는 말인가.
지자체의 들쑥날쑥한 지위와 간판 사례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광역자치단체 유형 가운데 하나로 '광역시'가 따로 존재하는 것은 개념상 중복과 혼선이다.
세계 유일의 서울'특별시'라는 명칭부터 문제다. 서울 아니면 모두 '보통시'란 말인가.
정부 개헌안에 따라 세종시가 '수도'로 격상된다면 이 역시 시대착오적이다.
분권이 요구하는 상식과 순리는 수도의 이전이 아니라 수도의 축소다.
덕지덕지 누더기 이불처럼 되어버린 작금의 지방자치 편제는 국가권력의 입장에서 분할 통치를 위한 정치적 호재(好材)다.
정체성도 떨어지고 자생력도 시원찮은 마당에 숫자만 불어난 개별 지자체들은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 앞에 자꾸만 작아질
수밖에 없다.
'지방정부'로 개명하고 자치재정과 자치 입법을 보장하더라도 칼자루를 손에 쥔 중앙정부와의 주종(主從) 관계에는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다.
특히 제왕적 대통령이라면 지방자치에 아무리 생색을 내고 선심을 쓴들 밀릴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다.
지자체의 난립과 증식은 행정이나 투자 측면에서 중복과 낭비를 당연히 야기한다.
비용·편익 대비 이른바 '규모의 비(非)경제'다.
기간 인프라나 공공 시설을 위시하여 경제 및 복지정책, 이벤트 사업에 이르기까지 지자체들의 소(小)지역주의에 따른
예산 소모와 주민 불편은 도(度)를 넘은 지 오래다. 오죽하면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광역서울도(道)' 제안을 했을까.
기초자치단체의 경우는 보다 심하다. 법정 인구를 지키려는 처절한 몸부림을 보노라면 지역민을 위해 지자체가 존재하는지
지자체를 위해 지역민이 존재하는지를 묻고 싶을 정도다.
문제는 그럼에도 작금의 현실이 정치인이나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하등 나쁠 게 없다는 점이다.
지자체의 증가는 공무원의 증원을 줄곧 동반해 왔다. 작년 봄 지방공무원은 역사상 처음 30만명을 돌파했다.
지방선거는 또한 직업 정치인을 양산하고 부양하는 흥행 불패의 정치시장이다.
4년 전 지방선거 때만 해도 9000명 가까이 공식 후보자로 활동했다.
게다가 지방정치가 주로 보고 배운 것은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와 악습이다.
부정부패에서부터 제왕적 시·도지사에 포퓰리즘까지 지자체에도 없는 게 없다.
오늘날 우리나라 지방자치에는 지방의 몰락과 지자체의 불패가 묘하게 동거 중이다.
이를 해소하는데 개헌이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못 된다.
무작정 지방분권형 개헌으로 몰려가는 게 능사가 아니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누구나 지역주민이기도 한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서 지방자치의 현주소를 진지하고 냉철하게
성찰하는 일이다.
평소 때 '무늬만' 지방자치, 선거 때 '기분만' 지방자치는 하나 마나고,
있으나 마나다. 지금은 지방분권의 당위성을 넘어 진정성을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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