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만물상] '자아비판' 시대

바람아님 2018. 4. 3. 09:49

(조선일보 2018.04.02 김기철 논설위원)

'나는 평생 인민에게 불리한 일을 한 적 없다. 40년간 교직에 있으면서 강의와 저술에만 전념했을 뿐이다.'

문화혁명이 한창이던 1967년 일흔일곱 살 원로학자 진인각(陳寅恪)은 '나의 성명(聲明)'을 발표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반대하는 반동(反動)이라며 자아비판을 요구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소신은 역풍을 만났다.

홍위병들은 '반성하지 않는다'며 밤낮으로 그의 집 주위에 스피커를 설치하고 비판 대회를 열었다.

수·당제국사 연구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노학자는 2년여 시달리다 심장병으로 세상을 떴다.

문화혁명 당시 자아비판을 강요당하다 자살한 지식인이 꽤 많았다.


▶6·25 당시 공산군 치하 서울에 남은 김성칠 서울대 교수는 공산당으로부터 자아비판격 '자서전'을 쓰도록 강요받았다.

투쟁 경력과 사상 경향 등을 자세하게 쓰라는 지시였다.

'투쟁 경력: 없음' '숭배하거나 영향 받은 인물: 없음'…. 김 교수는 이어 '사상 경향'에 이렇게 썼다.

'역사적 필연성을 믿었으나 성격이 다부지지 못해서 온건한 학구(學究)로 지냈음.'

그는 스스로 얼굴 붉어질 만큼 민망했다고 고백했다.


[만물상] '자아비판' 시대


▶공산 국가의 자아비판은 정적(政敵)을 숙청하고 당의 독재(獨裁)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소련 공산당 이론가였던 부하린은 스탈린 치하에서 반(反)혁명 활동을 했다고 자백하고 처형됐다.

남로당 당수 박헌영도 6·25전쟁 후 '미제의 스파이'라고 자백하고 숙청됐다.

조지 오웰은 '1984'에서 전제(專制) 권력은 숙청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아비판과 자백을 받아내는 데 집착한다고 꿰뚫어봤다.


▶국토교통부가 지난주 공개발표회를 열어 박근혜 정부 정책을 '자아비판'했다.

민간 전문가와 국토부 공무원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박근혜 정부 당시 국토부 정책이 '빚내서 집 사라 정책'이었다며

"가계 부채가 급속히 늘어나 부작용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부동산 매매 수요 창출을 위해 빚내서 집 사라는 식의 정책을

추진한 것은 부적절했다"고 비판했다. 국토부는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며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자아비판이 의미 있는 경우도 있다. 전 정부뿐 아니라 현 정부 실책과 과오까지 겨눈다면 공감을 얻을 만하다.

부처마다 앞다퉈 나선 '적폐 청산'이 우스꽝스러운 것은 전 정부를 망신 주고 현 정부 위신만 높이겠다는 의도가

읽히기 때문이다. 권력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자아비판' 대열에까지 서야 하는 공무원들의 처지가 측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