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생태원에 부임한 첫날 나는 곧바로 사무실 순방에 나섰다. 난생처음 맡은 최고경영자 역할을 정말 잘해보고 싶어 나는 꽤 많은 경영학 책을 섭렵했다. 그러나 첫발을 디딘 사무실의 모습은 모든 경영 전문가들이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바로 그 모습이었다. 직원들 책상 사이마다 칸막이가 어른 키만큼 높았다. 그 방을 빠져나오며 나는 "칸막이를 없애야 소통이 원활해진다던데…"라고 중얼거렸다.
그날 오후부터 곧바로 칸막이 철거 작업이 시작됐다. 원장님 지시 사항이라며. 나는 사실 그런 지시를 내린 적이 없었다. 그저 혼자 구시렁거렸을 뿐이었다. 모름지기 윗사람은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은 얻었지만 칸막이를 없애면 업무 능률이 오르고 동료 간 관계도 증진된다기에 모른 체했다.
얼마 후 한 직원이 면담을 원한다며 원장실로 찾아왔다. 그는 죽기를 각오하고 직언하겠다며 칸막이를 다시 설치해달라고 했다. 전후좌우로 뻥 뚫린 공간에서는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일리 있는 항변이었다. 그래서 나는 칸막이 설치 여부는 부서별로 토의해서 자발적으로 결정하라고 지시했다. 그랬더니 절반은 예전처럼 칸막이를 다시 세웠다. 칸막이를 복원한 부서의 업적도 함께 복원됐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최근 스웨덴 연구진에 따르면 칸막이가 없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평균 3분마다 업무에 방해를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칸막이가 있는 사무실보다 분위기가 훨씬 더 산만하고 동료 관계도 원만하지 않았다. 게다가 상사와 동료가 늘 지켜본다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물론 감기 같은 전염성 질환에도 더 손쉽게 노출돼 있어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효율과 생산성에만 중점을 두는 공간 구조와 배치는 결코 현명하지 않다. 열린 듯 닫힌 혹은 닫힌 듯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물리적 공간이 트인다 해도 마음의 칸막이가 걷히지 않으면 소통은 여전히 어렵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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